"공천폐지는 정치권 자해"…약속에 발목 잡혀 '티격태격'

"책임정치의 기본원리를 거스르는 것이냐, 대선공약 파기냐"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놓고 여야의 공방이 뜨겁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6일 "위헌 문제를 비롯해 지역 분열, 돈 선거 재현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정당 공천 유지를 거듭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의원들의 의견을 모은 뒤 다음주에는 의원총회를 열어 정당 공천 유지를 당론으로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어떤 핑계로도 번복할 수 없는 정치쇄신을 향한, 정치쇄신을 요구하는 국민적 결의이고 약속"이라고 반박했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지만 두 거대 정당이 공천폐지를 놓고 이렇게 격돌하는 이유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당지지도는 떨어지지만 수도권 등에서 현직 단체장과 의원을 다수 보유한 만큼 현역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공천 폐지가 불리하지 않다.

반면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을 압도하기 때문에 당의 간판을 걸고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가운데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보면 정당공천 폐지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원리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더 많다.

공천이란 정당이 각급 선거에서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절차는 현대 민주주의가 정당의 책임정치라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기득권의 포기라기 보다는 정당의 책임과 의무를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뜻과 다름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정치, 책임정치의 원리에 비춰보면 공천 폐지는 자해행위에 가깝다"며 "민주당의 공천 폐지 주장에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도 "당론으로 결정된 만큼 대외적으로는 말할 수 없으나 정당공천 폐지는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의 폐해로 거론되는 지방의원 줄세우기를 통한 지방정치의 예속, 돈선거, 각종 부정부패 등에 해법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지금의 정당공천은 책임공천이 아니다"며 "공천을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지 공천의 존폐는 사안의 본질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공천을 해서 문제가 발생해도 당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공천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해당되는 곳에는 공천을 하지 않는 등의 책임공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상향식 공천과 선거법 위반 재보궐선거 지역에 대한 책임정당의 무공천, 재보궐선거 원인제공 후보자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삭감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종합하면 기초선거 정당공천에 문제가 있다면 입법 등을 통해 후속대책을 마련할 일이지 공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 뿐 아니라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뒤집으려면 그에 걸맞는 충분한 해명과 사과, 설득을 통해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공천 폐지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새누리당은 대선 당시 위헌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포퓰리즘적 선동정치를 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비록 대선공약 번복이지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대선공약 폐기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국회 정개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학용 의원은 "대선 때는 이 문제가 면밀히 검토되지 않았다"며 "솔직하게 시인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 때 기존정치에 대한 불신에 기대 안철수 의원이 높은 지지를 누리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정당공천 폐지를 덜컥 내놓은 것은 아닌지도 반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여야는 공통공약이었던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1년 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6월 지방선거가 눈 앞에 닥치자 논의에 착수해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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