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의 여러분' 국가는 왜 소송을 남발하나

국가기관이 앞장서 무조건 상소…"사법피해 구제 방해"

정부는 왜 행정소송에 패하고도 상소를 남발할까?

법원은 최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두 번이나 법의 판단을 받고도 승복하지 않은 채 대법원에 '무조건' 상고를 하려 한다. 이같은 정부·국가기관의 무리한 상소(항소·상고) 남발은 사법부 안팎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소송 상소율이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아 사법·행정의 국가인력과 자원이 낭비된다는 비판이 높다.

대법원 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소송의 항소율은 8.6%로 미국(10.6%), 독일(6.5%), 일본(2.7%)과 상대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 소송 중 행정소송의 항소율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우리나라 행정소송 항소율은 37.3%로 독일(6.3%)의 약 7배, 일본(4.6%)의 무려 8배에 달했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대법원의 판단을 묻는 상고율 역시 독일 16.9%·일본 19.5%를 나타낸데 반해, 우리나라는 49.4%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1심· 2심 법원에서 패배하더라도 그 중 절반은 무조건 대법원으로 간다는 뜻이다.

양측 모두 상소하거나 상대방이 상소한 경우를 제외하고 국가만 상소한 비율을 살펴보더라도 역시 상소율은 매우 높게 나타났다.

법무부 국가송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한 건수는 1,382건이었다. 그 중 국가만 항소한 것은 526건으로, 38.1%의 항소율을 보였다.


국가는 지난해 항소심에서도 594건을 패소해 그 중 282건을 상고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47.5%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채 상고한 것이다.

기존 판례나 법리에 비춰보면 상소했을 때 실익이 없지만, 국가기관이 앞장서 무조건 상소함으로써 국가인력을 낭비하고 빠른 피해구제를 방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CBS 김미화의 여러분' 소송의 심리를 맡은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 이유를 그대로 인용하며 방통위의 항소를 기각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는 'CBS 김미화의 여러분'이 '소값 문제'를 다루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주의 조치'를 내렸지만, 1심 법원은 공정성을 위반하지 않았고 주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더욱이 항소심은 '공정성 위반 여부'에 대해 1심 판결 결과를 명확하게 수용하고 더이상 논란을 다투지도 않았다.

CBS 측 소송대리인 이재정 변호사는 "'CBS김미화의 여러분' 판결의 경우 새로운 법리를 '발견'했다기보다는 기존의 법리를 '확인'한 것일 뿐"이라면서, "방통위가 방송 분야에 있어 전문가라면 1심의 판결을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방통위 스스로 CBS를 비롯한 전체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반성적 고려'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렇듯 국가기관이 상소를 남발하는 이유 중 하나로 '방어적인 태도'를 꼽는다.

한 서울지역 판사는 "특히 민사의 경우 판례나 법리가 뚜렷해 대략 패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국가가 당사자인 경우 조정이 어렵다"면서,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끝까지 가보는 것이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에게 보다 안전한 선택지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판사는 "심지어 대법원에서 명확하게 국가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는데 다시 상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며 "상고하는 사건의 20~30%는 상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경우 소송을 할 때 인지를 첩부하지 않아도 되도록 정하고 있어 비용부담 없이 일단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상소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로 들기도 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항소·상고가 남발되다보면 결국 피해자 구제가 늦어지거나 사법인력 부족이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전문성을 바탕으로 남발을 줄여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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