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이날 북한 국방위원회가 전날 상호비방을 자제하자며 발표한 중대제안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태도"라며 거부했다.
김 대변인이 밝힌 정부 입장은 일단 북한 제안에 대한 유감으로 시작해, 문제의 원인은 북측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조건 없는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북측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가 아닌, 격이 더 높은 국방위 차원의 제안을 했다는 점, 우리 정부를 공격하는 표현을 자제하고 유화적인 표현을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하면, 단 칼로 자르다시피 한 정부의 반응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 정부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비방을 자제하자는 것과 북핵 논의를 하자는 것 등까지 한꺼번에 일축하는 것은 '굽히고 들어오라'는 메시지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남북 관계가 현재 '메시지 주고받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이번 입장 발표에서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끌고 오기 위해 나름의 메시지를 심어둘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이번 입장에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는 원칙만 있고 남북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이 제기한 조치는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되, 이를 위해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을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유연함이 필요했다"며 "정부 입장에선 받을 수 없는 군사훈련 자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태도에 따라 규모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여지를 흘릴 수 있지 않았냐"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 통일부와 외교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받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선을 긋고 그 이유를 설명을 하는 대신, 비방 자제나 북핵에 대한 논의 제안 등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로 활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말들이 나왔었다. 한마디로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왔을 때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근거하더라도, 북측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보인다면 남측이 충분히 여기에 부응하는 정책으로 보답할 수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 기싸움은 행간 사이사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정부 당국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정부의 입장은 명징한 북한의 태도 변화 말고는 그 어떤 행간도 의미가 없다는 식이나 마찬가지였다. 통일외교국방 등 관련 부처들의 의견이 조율됐다는 인상보다는 마치 군사적 도발을 통제하는 국방부의 단독 입장인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태도로 과연 정부가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겠냐가 가장 큰 문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박사는 "정부가 북한의 제안에 대해 대화의 실마리를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와는 사실상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앞으로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