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설 명절에 오지 말거라"

[AI 르포]가창오리 떼죽음 고창 동림저수지 주민들 불안…축산농민은 막막

가창오리가 떼죽음을 당한 동림저수지에는 여전히 철새들이 무리지어 있다. (사진=전북CBS 임상훈 기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로 가창오리가 떼죽음을 당한 전북 고창군 성내면 동림저수지.

20일 여전히 철새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가르고, 얼음이 녹은 저수지에는 수백여 마리가 노닐며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더불어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도 가시지 않았다.

동림저수지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박선영(53) 씨의 집은 저수지를 바라보고 바람을 안고 있다.


"바람을 타고 조류 인플루엔자가 번진다면서요. 저수지에서 가창오리 죽었다는 소리 듣고 자식들한테 설 명절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혹여 손자, 손녀에게 해라도 끼칠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박 씨는 올해 쓸쓸한 설날을 맞게 됐다.

이 동네 토박이인 이성수(57) 씨는 매년 겨울이면 철새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다고 했다.

이 씨는 "새벽에 철새들이 한번 날기 시작하면 TV가 찌지직거리며 잘 안 나온다"고 말했다.

TV 전파를 방해할 정도로 개체 수가 많다는 것.

이 씨는 "그래도 지금까지 한 번도 철새가 떼죽음 당한 적은 없었다"며 "70년대에 청산가리를 놓고 일부러 잡으려 해도 한두 마리나 죽을까말까 했다"고 회고했다.

아흔 살 된 남용순 할머니 역시 "내 평생 철새가 한꺼번에 죽는 일은 없었는데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당한다"고 당혹스러워했다.

가창오리가 떼죽음을 당한 동림저수지는 방역과 함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전북CBS 임상훈 기자)
하지만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보다 더 가슴 아픈 건 자식 같은 오리를 매몰해야만 한 축산농민들의 심정이다.

고병원성 AI 발병으로 매몰이 진행된 부안군 줄포면에 사는 한 농민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막막한 현실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이 농민은 "전체적으로 매몰이 진행되면 너무 힘들어진다"며 "오리 키우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데 AI가 확산되면 완전 백수 되는 것이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의심신고가 잦아들면서 주춤하나 했던 불안감은 가창오리의 떼죽음의 원인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밝혀지면서 농가와 주민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전라북도는 동림저수지에 광역 소독기를 설치해 방역작업에 나서는 한편 방역 인력을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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