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사태'로 시험대 오른 반기문 사무총장(종합)

'이란 초청' 철회 '흠집'…군사대응 막고 평화회담까지 `공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시리아 사태'로 시험대를 맞고 있다.

스위스에서 22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시리아 평화회담'(제네바-2 회담)이 시작 전부터 삐걱대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평화회담은 사실상 반 총장이 주도해 지금 단계까지 왔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패 여부는 `반기문의 정치·외교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다.

그런데 유엔이 이란 정부에 대한 회담 참석 초청 제안을 하루 만에 철회하는 `돌발상황'이 불거져 외형상으로는 반 총장의 체면이 구겨진 모양새가 됐다.

시리아 평화회담은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을 포함해 초청국 전체가 참석해 22일부터 스위스 몽트뢰 회의와 시리아 정부와 반군 간에 24일부터 열리는 제네바 회의로 구성된다.

당초 몽트뢰 회의에는 유엔 등 4개 국제기구와 30개국이 초청 대상이었으나 지난 19일 반 총장은 이란을 물론 한국 등 10개국을 추가 초청국으로 선정했다.

이란이 포함된 것은 무엇보다 러시아 정부의 강한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도 이란과 두어 차례 직접 접촉해 이란 정부의 입장을 면밀히 살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란 정부가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반 총장 측에 전달, 반 총장이 전격적으로 추가 초청대상국에 이란을 포함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유엔 소식통들은 이란이 밝힌 `건설적인 역할' 언급이 화근을 자초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립하는 당사자들을 중립적 입장에서 중재해야 하는데다 시리아 평화회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는 반 총장으로선 막연하기는 하지만 이란 정부의 입장을 나쁘게 볼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참석국이 많아야 시리아 난민에 대한 지원금 모금도 원활해진다는 계산도 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을 요구한 유엔 외교관은 dpa통신에 "반 총장은 이란의 입장을 알면서도 초청장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리아 사태를 놓고 반 총장과 미국 사이에 쌓인 감정이 터졌다는 게 유엔 외교가의 관측이다.

앞서 시리아 사태가 악화했을 때 미국은 군사적 개입도 검토했으나 국내의 반대 여론에다 반 총장이 난색을 표명해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은 여러 수준의 경로를 통해 반 총장에게 "즉각적인 군사공격을 위해 시리아 화학무기 실태를 조사하는 유엔 조사단을 곧바로 시리아에서 철수시켜달라"고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 총장이 "유엔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번번이 맞서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카드가 좌절됐다. 이때부터 시리아 해법을 놓고 반 총장과 미국 간에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시리아 평화회담을 주도하는 반 총장에게 극도로 불편한 감정을 품고 있던 차에 '건설적'이라는 막연한 입장을 밝힌 이란을 회담에 초청한 것을 빌미로 미국이 반 총장에게 반격을 가했다는 게 유엔 외교가의 분석이다.

미국은 "시리아 과도정부 구성을 요구한 제네바-1 회담 합의문을 (명확히) 승인하지 않은 이란을 초청한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 유엔의 이란 초청 발표 전에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런 입장을 반 총장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다른 정부 관리는 그럼에도 반 총장이 이란 초청을 강행하자 케리 장관은 격분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엔 외교가에서는 반 총장이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란 초청을 철회한 결정적 이유는 시리아 반군의 반대와 불참 선언으로 보고 있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한 유엔 외교관은 "중동지역 국가들이 반군을 통해 압력을 넣은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며 "한쪽이 없는 상황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엔의 초청 철회에 당사국인 이란과 그 우방인 러시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란은 "반 총장이 압력에 굴복해 초청을 철회해 유감"이라며 이란이 빠진 제네바-2회담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고, 러시아 역시 "재앙 수준은 아니나 실수"라고 반 총장을 비판했다.

서구권 주요 언론들 역시 반 총장의 이번 결정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슈피겔은 "반 총장의 외교적 패배"라고 했고, AFP통신은 "전례가 없는 외교행위"라고 평했다.

또 포린폴리시는 "(회담) 초청을 둘러싼 문제로 시리아 평화회담이 붕괴 직전에 놓였다"고 진단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시리아 내전을 종결시키려는 국제적 노력을 흐리게 만든 외교 실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의 이란 초청 철회 결정이 최종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갖고 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리아 사태를 놓고 분명한 입장차를 보이는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아울러야 하는 반 총장으로선 이번 철회 조치로 오히려 실익을 챙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의 우방인 이란을 초청하는 과감성을 보여 일찌감치 러시아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청 철회에 대해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지만 철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란 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드러난 만큼 러시아로서도 더는 강하게 비난하기 힘들다.

아울러 외형상으로는 체면을 구기는 부담에도 막판에 미국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반 총장은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일정 정도 해소하고 미국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결실을 챙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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