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야스쿠니참배 한 달…우경화 '마이웨이'

입장표명 강화하며 전방위 외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지 26일로 한 달이 됐다.

국제사회는 한국·미국·중국 등을 중심으로 참배를 비판하는 등 강력한 견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아베 내각은 이를 의식하면서도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정계, 언론 등은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한 미국의 비판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주일 미국대사관이 "실망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을 때는 자국의 입장을 배려해 미국 정부 차원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으나 국무부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공표하자 내부에서 위기감이 고조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자중하기보다는 아베 내각의 판단을 국제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논란을 확산해 역효과를 자초하는 셈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관해 내비치는 우익적인 견해가 신념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 총회에서의 행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는 다보스 포럼 사상 일본 총리의 첫 기조연설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정책)의 성과와 가능성을 홍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관심은 아베노믹스보다 야스쿠니 신사에 집중됐고 일본이 내놓은 해명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악화하는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과 독일에 비유했다가 유럽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발언 전문을 공개하면서 영국·독일과 같은 충돌을 막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비유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오해"라고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설명하겠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경화는 말에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차근차근 구체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연두 소감에서 개헌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이달 7일에는 일본판 NSC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인 국가안전보장국을 발족했다.

육상 자위대의 여단과 사단 15개 가운데 7개를 기동형 부대로 바꾸기로 방침을 정했고 자위대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범위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또 독도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명기하도록 하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편찬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해 한국·중국과의 전면전도 예고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중국 하얼빈 역에 문을 연 안중근 기념관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고립시키려고 협공을 펼친다고 규정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방위 외교도 펼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중동·아프리카, 스위스(다보스 포럼), 인도를 방문하는 등 1월의 절반가량을 국외 순방에 할당했다.

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 등을 프랑스, 인도, 미국에 각각 보내 일본의 입장을 홍보했다.

아베 총리는 아프리카에 거액의 차관 지원을 약속하고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대한 동의를 확보했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집단자위권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은 국가를 우선 포섭한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도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한 우려의 뜻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인도에 2천89억엔(2조1천700억원) 상당의 엔 차관을 선물로 제공하고 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간 정례 협의 신설, 일본 자위대·인도 해군 합동훈련 등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베 내각의 이런 기조가 상당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일본 내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고 지지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는 것이 외교·안보 정책에서 아베 색깔을 드러내는 자신감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이종원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에 관해서는 아베 총리 주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총리 본인은 정면 돌파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4월에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이 "분수령이 될 수 있지만, 집단자위권은 미국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보장에 관해 미국에 협력하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한 비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다음 달 9일 예정된 도쿄지사 선거 결과, 4월에 단행할 소비세 인상이 실물 경기에 미치는 영향 등도 아베 내각의 외교·안보 정책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외교가의 분석이다.

실제로 일본 공영방송 NHK의 모미이 가쓰토(인<米+刃>井勝人·70) 신임회장이 25일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전쟁을 했던 어떤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면서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을 비판한 것은 아베 정권의 기조가 보수·우경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는 NHK를 동원해 독도, 센카쿠 열도에 관한 주장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정부·자민당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오른쪽'이라고 하는 것을 (NHK가) '왼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해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한다는 논란까지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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