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특성상 명절 중 하루는 반드시 근무를 해야 하는데, 결혼 3년 차인 주부 A 씨 입장에서는 '시월드'에 가야 하는 당일에 근무를 하고 싶었던 것.
A 씨는 지난해 추석에는 당일에 근무가 잡혀 시댁에 가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진한 실망이 들었다고 했다.
A 씨는 "어차피 연휴에 직장에서 일해야 한다면 시댁에 가야 하는 명절 당일에 일을 하고 싶었다"면서 "명절 당일에 시댁에서 일하나 회사에서 일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아쉬워했다.
"명절 일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는 A 씨는 "시댁에서 음식을 많이 하지는 않아 몸이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시댁에서는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러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A 씨는 명절 당일은 물론 전날에도 시댁에 가서 일해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친정에는 명절에 음식을 많이 해서 일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소한 명절 전날에는 친정에 가서 일손을 돕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뒤 지켜본 시부모님들도 생각이 열려 있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조심스럽게 이런 '제안'을 했지만 오판이었다.
A 씨는 "합리적으로 의사소통될 거라고 생각해 말씀드렸는데 시어머니가 무척 당황하시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A 씨처럼 명절 당일 근무를 바라는 '직장 주부'들은 주로 주부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장남의 처이지만 명절 당일에 당직을 서 몇 년 째 안 간다. 당직을 서면 임금도 두 배', '시집에서 무급 노동을 하느니 차라리 당직 유급 노동을 하겠다', '아이를 가지라는 시어머니의 압박을 피해 특근을 자처했다' 등 다양한 글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주부는 "시어머니에게 미리 전화해 '직장 근무로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며 "다른 이유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직장은 이유가 된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런 명절 당일 근무 사유도 '뒷담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손아래 동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한 주부는 "첫 명절에 동서가 일을 나가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매년 명절마다 반복된다"면서 "일은 일대로 해 고생은 내가 다 하고 동서는 생색만 내 시댁에 가는 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직장 때문에 명절에 내려가지 못하게 된 주부는 "며칠 전 손윗동서가 전화해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냐'며 비꼬듯 말했다"면서 "남편이 당직으로 못 가면 바쁜 거고 며느리가 당직서서 못 가는 건 일부러 그러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명절 스트레스는 불평등한 대우와 노동으로 생기는 부당한 감정이 가족 간 갈등이 모이는 명절에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차별대우나 시댁에 먼저 가는 등 불합리한 요소를 차차 고쳐나가고 남성과 여성의 고정적인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면서 "명절은 가족 간 갈등이 모이는 고통스러운 날이 아닌 즐거운 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