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앞에 버려라" 닮고 싶은 한혜진의 용기

"어떤 선택 앞에서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들어가면 어떤 선택도 못한다. 무엇을 하겠냐. 무서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도 그렇고 작품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를 지키겠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그게 본인에게 복이 돼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이하 따말)를 찍느라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가 개봉했는데도 홍보를 못하다 설 연휴 하루 전날 어렵게 시간을 뺀 한혜진(32)은 선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던 차에 그녀의 말을 듣고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알지만 실천이 어려운 삶의 지혜인데, 한혜진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자신의 주관을 밝히며 강단 있는 면모를 보였다.

혹자는 80~100억 원 대의 몸값을 자랑하는 스포츠선수 기성용과 결혼한 한혜진을 두고 "봉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8살이나 어린 유명한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마냥 쉬운 선택이었을까. 드라마 제목도 있지 않은가.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한혜진을 처음 만나본 결과 그녀 정도의 용기와 강단이라면 어떤 일도 잘해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가 세 자매 중 막내인 그녀를 아들처럼 여기며 의지한 까닭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결혼 전에 찍은 영화와 결혼하고 찍은 드라마가 동시에 대중에게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절실한 마음이 담겨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결혼하면 곧 영국으로 떠날 계획이여서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에 절실한 마음으로 찍었다. 영화 자체도 너무 짠하고,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컸다. 따말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선택한 작품이다. 예상보다 빨리 대중 앞에 서게 됐는데, 내가 지금 나서면 분명 깨지고 아플 일이 생길텐데 도전해야하나 숙고했다. 하지만 3고까지 대본을 받았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렵게 한국에 나온 만큼, 또 언제 카메라 앞에 설수 있을지 모르는 만큼 제게 소중하고 절실한 작품이다. "
 
- 결과적으로 드라마 반응이 좋으나 굳이 새색시가 '불륜녀' 캐릭터를 연기해야했나

"팬들이 말렸다.(웃음) 안 그래도 욕먹으면서 왜 나오냐, 왜 굳이 그 작품이냐고 했다. 근데 제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아무도 못 말리는 성격이다. 뒤도 안돌아보고 간다. 제 안에 그런 가치가 있다.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하며 안하는 거보다 하는 게 맞다 라고 생각하는 가치. 웅크리고 있기보다 도전하는 편이다."
 
- 남자가 사랑할 때는 남자의 사랑을 부각하기 위해 여자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배우들이 기피했을 수도 있는 역할이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기존 작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주몽'이나 영화 '용서는 없다' '26년'등 남자배우들의 덕을 제가 많이 봤다. 기본적으로 내가 작품의 주축이 돼야한다는 욕심이 없다. 주조연에 상관없이 작품 속에서 사는 것이며, 그게 모아져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라고 본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땡큐였지. 멜로 영화를 할 기회였고 무엇보다 상대가 황정민 아닌가. 좋은 작품, 좋은 상대를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 극중 아버지의 죽음이 양아치 태일(황정민)에게 마음을 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실제 기성용에게 마음을 열게 된 계기와 겹쳐졌다.

"우연의 일치인데, 저도 희한했다. 참 마음 아픈 일이나 연기자로서는 그 접근에 있어 더 깊이 있게 다가가게 해주더라. 아직도 장례식장 가면 마음이 뭉글뭉글하고 묘하다. 호정(한혜진)처럼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한다. 어쨌든 장례식 장면은 호정이 '내가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었구나' 자신의 진심을 직시하게 되면서 자존감보다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 본인의 선택도 그러했나?


"하하(웃음). 선택 앞에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들어가면 어떤 선택도 못한다. 무엇을 하겠냐. 무서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 그 선택이라는 단어도 쑥스럽지만 나를 지키려하면 그 마음이 멈춘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쌓아온 것을 지키려고 하면 그것도 멈춰진다. 나를 지키겠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나중에 복이 돼 돌아온다고 본다."

- 과거 배우 설경구가 소년답다고 해서 보이시한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 결혼하고 따말에 나와서인지 다들 여성스럽다고 느낀다.

"일상에서 씩씩한 것도 제 모습이고 따말의 모습도 제 모습이다. 어떨 때는 내가 참 겁이 없네 싶다가도 따말의 은진이처럼 죄책감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힐링캠프'할 때는 내가 이렇게 활달하고 적극적인가 싶더라. 그러다가 영국서 신랑이랑 둘이 지내다가 따말 첫 촬영 나올 때는 얼마나 쑥스럽던지. 나는 아직 나를 모르는구나, 저도 저를 잘 모르겠다."

- 세상의 편견에 용감한 편인가? 26년에도 출연했다.

"26년을 보고 저를 좀 다르게 봐준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안티도 많이 생겼다.(웃음) 지금 하는 드라마도 그렇고, 작품이 흥하건 아니건 얻는 게 있다고 본다. 잃을 것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다."

- 아들 같다는 소리를 들었겠다. 아버지가 예뻐했을 듯한데.

"딸 셋에 막내인데 부모님께 할 말 있으면 제가 늘 대표로 나섰다. 집안에서 남자 역할 했다. 부모님도 저를 많이 의지하셨고 동시에 제 결정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기 앞가림 잘하는 애라고 생각해주셨다. 요즘 따말 찍으면서 아버지 생각이 부쩍 많이 난다. 극중 아버지가 너무 좋으시다."

- 결혼생활은 어떠냐?

"엄마가 자식사랑이 끔찍해서 제손에 물을 안 묻혔다. 시집가서 요리를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제가 잘하더라. 엄마가 음식솜씨가 좋다. 내가 이게 가능하네, 밥물도 얼마나 잘 맞추는지(웃음). 결혼해서 좋다. 지금은 자리를 비워서 미안할 따름이다. 다행히 엄마(시어머니를 이렇게 불렀다)가 현재 영국에 계신다. 교사이신데 방학이다. 보통 (며느리에게) 내조해야지 그러는데 여자가 일하는 게 좋다고, 작품 활동해야지 그런 주의다. "

- 영국은 언제가나? 향후계획은?

"드라마 촬영이 막바지라 2월 중순에 영국 간다. 좋은 작품 있을 때 다시 나오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신랑 옆에서 열심히 밥하고 신혼을 즐길 계획이다. 그동안 떨어져 있다 보니 너무 애틋해서 빨리 가야지 그 생각뿐이다. 경기 나갈 때마다 걱정되고, 거기 생활을 아니까 짠하다. 정말 시골이라서 운동 말고는 할 게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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