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이동제한 조치로 출하시기를 놓친 가금류 농장들이 하루에 수백만 원의 사료비와 인건비를 추가 부담하는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급기야 정치권에서 닭과 오리 수매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의 수급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현재로썬 수매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혀 축산농민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 닭·오리 산지가격 하락…정치권 수매 촉구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6일 현재 산지 닭 출하가격은 1kg에 1,499원으로 AI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달 중순 평균 가격인 1,534원에 비해 2.3% 하락했다.
특히 산지 오리 가격은 1kg에 6,000원 선에 출하돼, 지난달 중순의 7,500원에 비해 20%나 폭락했다. 더구나 이마저도 정부의 이동제한 조치로 제때 출하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닭과 오리 농민들은 사료비와 인건비 등으로 하루에 많게는 300만 원 이상 손해를 보고 있다.
충북 진천군 덕산면에서 오리를 사육하는 김덕기(53) 씨는 “출하되지 못하고 사료만 축내고 있는 오리를 보고 있으면 한숨밖에 나지 않는다”며 “정부가 수매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일을 버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야 정치권이 정부에 대해 즉각적인 수매를 촉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7일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아직도 이중삼중의 고통을 당하는 피해 농가들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며 “정부는 가축 수매 검토와 함께 경영 안정 자금 지원에도 신속히 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직 수매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 AI가 4번 발생했을 때 3차례 수매가 있었고 1번은 수매하지 않았다"며 "아직은 AI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매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 소득안정자금 등은 이미 예산이 배정돼 있어 집행에 어려움이 없지만, 수매자금은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8년 AI 당시 3천만 마리의 오리와 닭을 수매하는데 922억원의 자금이 투입됐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최소한 30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있다. 현재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물량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하림과 마니커, 체리부로 등 국내 전문 판매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고물량은 닭고기 3,000톤과 오리고기 1,300만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판매업체 입장에서는 재고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소비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수매에 나설 경우, 재고물량 처리가 힘들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7일 이들 판매업체에 대해 토종닭 100만 마리를 추가 비축하도록 요구해 골치를 앓고 있다.
전문 판매업체 관계자는 “재고물량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닭과 오리를 추가 수매할 경우, 이번 AI 사태가 정상화된 뒤에는 정부 수매물량부터 시장에 방출하게 될 게 뻔하다”며 “이렇게 되면 업체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도 이들 전문 판매업체의 입장을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닭과 오리고기 소비가 줄면서 판매업체들의 재고물량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발생한 AI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리던 토종닭 사육 농민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는데도 수매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정부의 태도에 가금류 축산 농민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