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들끓는 외압론…"우리네 삶 대변한 목소리 더욱 귀기울여야"

대중적 관심에도 상영관 적어 외압설 불거져…영화 사회적 가치 뒷전 우려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일부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관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압설에 휩싸였다.

하지만 '진짜 외압이 있냐, 없냐'라는 논쟁에만 매몰될 경우 이 영화가 지닌 우리네 삶을 대변한 동시대성의 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10일 오후 2시께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예매를 위해 롯데시네마 홈페이지(www.lottecinema.co.kr)를 찾았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 상단 '빠른 예매'에서 영화를 선택한 뒤 서울 지역의 상영관을 검색했는데 '가산하이힐' '용산' '장안' '청량리' '피카디리(종로)' 다섯 군데가 뜬다.
 
8개 상영관 1642석 규모의 청량리점에서 이튿날인 11일 상영 시간표를 확인하니 191석 규모의 1개관에서 오전 9시40분, 오후 2시와 7시 세 차례 상영 중이다.

이 지역에 사는 직장인이 퇴근 뒤 또 하나의 약속을 볼 수 있는 시간대는 그나마 촉박하더라도 오후 7시가 유일한 셈이다.
 
같은 날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6일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은 지난 주말(7~9일) 동안 192개 스크린에서 2274회 상영돼 17만 5837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많은 376곳 스크린에서 4732회 상영된 4위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18만 6870명 동원)과 대등한 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관객의 높은 호응도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6일 개봉 즈음 이 영화의 상영관은 100여 개에 머물렀다. 롯데시네마의 경우 처음 7개관에서 17개관으로 늘리기는 했지만, 직영관이 아닌 위탁관들이 자체적으로 늘린 것이고 나머지도 예술영화 전용관에 배치됐다.

"또 하나의 약속을 다양성 영화(예술 영화)로 분류한 결과"라는 것이 롯데시네마 측의 입장이었다.
 
이는 곧 관객과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하나의 약속 홍보를 맡고 있는 영화사 도로시의 장소정 대표는 "상영관이 190여 개라고는 하지만 서울 지역 상영관이 크게 부족하고 시간대도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몰려 있어 영화를 보고 싶어도 못 본다는 관객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며 "지난 주말 무대인사를 하는데 상영관을 도는 동선이 커서 무척 애를 먹었지만, 의지를 갖고 원정관람을 오는 관객들이 객석을 메운 덕에 무대인사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고 전했다.
 
배급을 담당하는 올(OAL)의 이화배 배급마케팅 이사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이래 매진된 상영관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만큼 개봉 첫 주말 5위 성적이 다소 아쉽기도 한데, 왜 기대보다 못한 결과가 나왔는지를 분석해봤다"며 "보통 관객들이 개봉전에 영화 정보를 얻는데 우리 영화는 개봉 이후 상영관이 늘어난 경우여서 개봉관 정보가 부족했고, 몇몇 극장에서는 뒤늦게 상영 시간표에 끼워넣다보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 오후 등 관객이 몰리는 주요 시간대에 상영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지난주 목 금 토 일 나흘간 오후 주요 시간대에는 거의 매진 사례를 보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에 따라 개봉 2주차 편성에서는 상영관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프로그램팀이 지난 주말 흥행 성적을 두고 현재 회의 중인 것으로 아는데, 빠르면 11일 오전에 주말 상영관의 규모에 대한 윤곽이 나올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성적이 좋으면 상영관을 늘린다는 시장 논리를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 "보는 행위 자체가 전환 부를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로"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또 하나의 약속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의 애환을 그렸다는 이유로 외압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롯데시네마 홈페이지만 봐도 '대기업의 횡포. 상영관 수가 왜 적은가 했더니(woo***)' '대단합니다 그 기업. 영화 보려고 20㎞나 떨어진 곳까지 다녀왔네요(dow***)' '눈에 보이지 않는 외압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통 400~500개 상영관이 잡힌다는데 이 영화는 100여 개밖에 안 된다네요(kon***)' 등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이 적게 배정된 것을 두고 외압과 연결짓는 댓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이에 대해 음모론 등 추측성 의혹을 제기하기보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제작 과정 등이 지닌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힘써야 또 하나의 약속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물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외압의 특성상 이번 경우도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혀내기 힘든, 성과 없는 싸움이 될 수 있다"며 "자본·시장의 검열은 주체가 보이지 않을 뿐더러 주체가 있다 하더라도 인격화된 주체가 아닌 매커니즘화된 것이어서 결국 책임소재를 찾기 어렵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롯데시네마의 판단이 자기 검열의 징후인지, 아니면 그들의 말대로 상업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인지를 제3자인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롯데시네마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몇몇에 불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약속을 봄으로써 멀티플렉스가 상영관을 늘리도록 강제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 노 교수의 설명이다.
 
노 교수는 "이 영화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문제를 자기검열이나 외압의 문제로 접근하면 오히려 영화를 본다는 것이 정치적 행위가 됨으로써 관람객의 폭 자체를 줄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프레임 안에서는 롯데시네마의 운신의 폭도 좁아져 상영관을 늘리고 싶어도 뒤늦게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 영화가 판타지의 세계를 강조하는 웰메이드 상업 영화로 가고 있는 환경에서, 또 하나의 약속은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데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제작비를 모아 만들어졌다는 동시대성을 품고 있는 상업 영화라는 데 주목할 만하다"며 "일단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이러한 동시대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때로는 보는 행위 자체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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