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앙갚음' 절도범 "제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수년간 임금 2억원 못 받아…고의부도 하도급업체에 '잘못된 복수'

"제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30차례에 걸쳐 4천500만원 상당의 전선과 동 배관을 훔친 20대 절도범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11일 광주 서부경찰서에서는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의 이모(29)씨가 쇠고랑을 찬 채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30차례에 걸쳐 신축공사장만 노리고 절도 행각을 벌여 4천만원 상당의 전선과 배관을 훔쳐 고물상에 팔아넘겼다.

절도를 당한 건설현장은 피해가 막심했다. 이미 건물 내부에 내장된 전선과 배관을 뜯어가는 바람에 몇 배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이 투여될 상황에 부닥쳤다.

비슷한 수법의 범죄가 잇따라 신고되면서 경찰은 전담반을 꾸려 범인을 추적했다.

붙잡힌 범인의 입에서는 뜻밖의 범죄 동기가 흘러나왔다. "건설업자들에 대한 원한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구구절절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놨다.

이씨는 지난 2006년 어린 시절부터 지내던 보육원을 나왔다. 만 20세가 돼 더는 보육원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홀로 살아야 하는 탓이었다.

그는 처음 2년여를 바닷가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낙지를 잡고, 전어를 잡고 그렇게 근근이 험난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그는 부산에서 일용직 건설 노동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장 업자들로부터 근로자소개소에 나가지 말고 함께 현장에 나가 일해보자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은 것을 기뻐한 이씨는 열심히 일했다.

창호 일에서 에어컨 설비, 전기배선 일 등 닥치지 않고 일한 이씨에게는 꿈이 있었다. 자신을 스카우트한 업자들처럼 밑바닥에서부터 배워 건설 관련 사업을 해보는 것이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사업을 하고 싶었던 이씨의 꿈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처음에는 임금을 잘 주던 하도급 업체들이 한두 달씩 지급을 미루더니 급기야는 아예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못 받은 돈이 수십 차례에 걸쳐 약 2억원에 달한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체납임금을 받으려고 인터넷을 통해 노동청에 상담도 받았다.


그러나 노동청은 "부도 처리된 업체에서는 돈을 받기 어렵다"는 답변만 줬다.

임금을 떼먹은 하청공사업체들은 원청으로부터는 공사대금을 받고 부도 처리하는 수법으로 임금을 체불했다.

이씨는 다시 명의를 바꿔 다른 곳에서 공사 일을 따내는 업자들을 보고도 마땅히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해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씨는 허리까지 다쳤다.

의사는 조금만 무리하면 며칠을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이씨의 허리를 진단하고는 이제는 공사 일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참고 참으며 광주의 작은 공사현장에서 일하긴 했지만 여기서도 한두 달 임금이 밀리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다른 사람들은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잠시 손이라도 벌려보지만, 고아인 이씨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 전선과 배관을 훔쳤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임금을 떼먹은 건설업자들에 복수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자신이 어리석었던 것 같다. 후회한다"고 말했다.

다른 직업을 구해볼 생각을 해봤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꿈이 있었다. 건설업체를 차려 자신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잘 주는 사장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광주 서부경찰서 형사과 윤주창 강력계장은 "이씨가 죗값은 받아야 하지만 임금체불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해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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