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팔아도 돈 될 때가 있다는데…

유통 9단 김영호의 Money Trend

일본의 한 주점. 종업원이 지나가는 손님에게 외친다. "한잔만 하고 가세요."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출출하던 차에 잘 됐다 싶은 직장인이 주점으로 쏙 들어간다. 가게 안에는 서서 먹고 마시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그렇다. 일본에서는 '서서 먹고 마시는 음식점'이 인기다.

사람들은 음식점에 들어가면 자리부터 찾아 앉는다. '음식은 앉아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일종의 고정관념인데, 요즘 일본에서는 서서 먹고 마시는 음식점이 인기다. 모든 걸 서서 해결해야 하는 이곳에선 종업원들이 손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잔만 하고 가세요." 그러면 손님은 딱 한잔만 마시고 간다. 이런 음식점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경기침체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소비자의 마음을 서서 먹고 마시는 음식점이 간파했다는 얘기다. 콘셉트가 흥미롭다 보니 이를 체험하려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원가절감효과 '탁월'

일본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세가지다. 서서 먹다 보니 상대적으로 술자리가 일찍 끝나고, 술을 적게 마시니 술값이 덜 나와 좋고, 적당하게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어서다. 딱 한잔만 하고 싶은 손님의 마음을 헤아린 서서 마시는 주점의 경영철학은 단순하다. 술을 파는 곳이라면 술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일본 주점은 술 중심이다. 술맛이 좋으면 인테리어가 궁색하고 가게가 다소 비좁아도 괜찮다. 어차피 딱 '한잔만' 마시고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서서 먹고 마시는 주점은 고객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 원가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인건비ㆍ인테리어비ㆍ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아서다. 색다른 고객 대응 방식이라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장점도 있다. 일부 주점은 맥주를 제외한 일본 전통술의 가격을 500엔(약 5269원)으로 통일했다. 고객이 평균적으로 머무는 시간은 대략 40여분. 고객 1인당 소비액은 1200엔(약 1만2645원). 1일 손님 회전율은 3회전인 것을 감안해 계산한 술값이다.

서서 마시는 주점은 서서 마시는 게 원칙이지만 일부 여성고객이나 장애인을 위해 의자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런 주점을 다녀온 사람들은 선불로 안주를 시키는 재미가 색다르고, 옆 사람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데다 시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가 묘하다며 체험담을 늘어놓는다. 일본에 서서 마시는 주점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좌석 없이 서서 먹는 다치쿠이立ち食い 소바점도 인기다. 250엔(약 2950원), 500엔(약 5269원)으로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발상이 경기침체를 타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관동 지역에 들어선 82개의 후지소바 점포는 하루 방문객이 약 5만명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객단가는 450엔(약 4743원). 500엔짜리 동전 하나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280엔짜리 우동을 팔면 점포엔 약 200엔(약 2108원)의 순이익이 남는다. 원가율이 27%에 불과하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무엇보다 타치쿠이 소바점이 성공한 데는 회전율을 높여 이익을 극대화한 것이 주효했다. 손님이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떠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에 불과하다. 일본 긴자銀座에는 서서 먹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 브랜드명은 '나의 이탈리안.' 우아하게 고기의 육즙을 음미해야 할 것 같은 이곳에서 서서 음식을 먹는 모습은 무척 색다르다. 놀라운 점은 데이트하는 연인도 많다는 거다.

서서 먹는 국수집, 손님 체류시간 '10분'

이 레스토랑을 창업한 사카모토씨는 2009년 외식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북오프(Book Off)라는 일본의 유명한 중고책 전문체인점을 운영했다.

그의 지론은 '고객 제2주의'다. 고객은 둘째이고, 직원이 첫째라는 얘기다. 최고의 직원을 뽑아 최고로 대우해주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믿는다. 서서 먹는 음식점이 손님과 직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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