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무죄', 국과수의 필적 재감정이 결정적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 기자)
강기훈 씨가 23년 만에 자살방조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강 씨는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연합 간부였던 김기설 씨의 투신자살을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3년간의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이었다.

국과수가 김 씨 유서와 강 씨 진술서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놓으면서 강 씨가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것으로 법정싸움은 결론이 났다.

반면 같은 필적을 가지고 2007년과 지난해 국과수가 벌인 재감정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과수는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재감정을 실시한 결과 김 씨의 전대협 노트·낙서장이 유서와 필적이 같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재감정 대상이 된 노트는 김 씨의 친구가 1997년에서야 발견한 것으로 1991년 감정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은 증거였다.

강 씨 무죄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필적감정 결과가 나왔지만 재심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강 씨는 2008년 1월 재심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2009년 9월 서울고법에서 재심신청을 받아들였지만 검찰이 고법 재심결정에 불복하면서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과거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좀처럼 재심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 시간만 지나갔다.

대법원은 무려 4년여간이라는 시간이 지난 2012년 10월에서야 결정적인 재심의 근거인 전대협 노트가 김 씨의 것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면서도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 씨가 법원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재심 결정을 확정했다.

결국 재심에서는 검찰이 압수한 김 씨 이력서 등 개인적 자료와 전대협 노트, 낙서장, 유서의 필적이 종합적으로 감정됐고 국과수는 지난해 12월 "전대협 노트·낙서장은 유서와 필적이 동일하고, 이와 김 씨의 다른 자료도 필적이 동일하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새로운 결론을 법원에 제출했다.

재심 재판부는 "2007년 국과수의 감정 결과와 재심에서 실시한 국과수의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해 보면, 유서는 강 씨가 아니라 김 씨가 작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23년 만에 유죄 결정을 뒤집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