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 당사자들은 13일 오전, 33년 동안의 외로운 싸움을 끝마쳤다.
부산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한영표)는 이날 부림사건에 대해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58) 등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나 이번 재판은 이들이 지난 2009년 계엄법·집시법 위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아낸 데 이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까지 벗겨낸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의 이유에 대해 "피고인들이 경찰조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고, 검찰조사에서는 강압,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술했지만, 불법 구금기간이 상당히 오래됐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후 진술이 이뤄진 점으로 미뤄 자유로운 정신상태에서 진술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들이 같이 역사 공부를 하고 사회에 비판적인 토론을 진행한 것은 국가의 권리와 안정 등 실질적인 해악을 줄 명백한 위협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들이 갖고 있던 이른바 '불온서적'도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이적성 여부도 다시 판단해야 해 증거로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누명을 벗었지만 긴 시간 이들을 옭아맸던 '국가보안법'은 여전한 과제로 남게 됐다.
고씨는 당시 이들의 변호를 맡았던 고(故) 노무현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를 표하며 "국가기관에 의해 이뤄지는 개인의 인권 유린에 국가 보안법이 악용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는 지난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고(故) 김기설 씨가 투신자살한 사건이 일어나자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는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내놨지만 2007년 재감정에서는 완전히 뒤집힌 결과가 나왔다. 유서의 필체가 김씨의 노트 필체 등과 유사하다는 것.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1991년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찰의 다른 증거만으로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간암 투병 중으로 알려진 강씨는 담담하게 무죄 선고를 받아들였다.
그는 판결 직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꾼 사법부를 향해 "재판부가 유감의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일침했다.
또 "(이 재판은) 저의 재판이 아니다.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 검찰도 반성하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며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