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눈길끄는 기념일 싸움, 밸런타인데이 약화되나?

정월대보름,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

오늘 2월 14일은 19년 만에 처음으로 밸런타인데이와 정월 대보름이 겹쳤다. 게다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일제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해, 이날을 무엇으로 기념해야하는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런 기념일의 경쟁은 각각의 목적 속에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이다.

14일은 연인들이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이다. 밸런타인데이는 1930년대 일본 제과회사가 사제 발렌티노를 추모한다며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선전한 데에서 시작됐다.

사제 발렌티노가 로마 황제의 명령을 어기고 사랑하는 연인의 주례를 섰다가 처형당한 날이 2월 14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밸런타인데이는 달콤한 스토리텔링의 효과로 어느 새 우리 사회에서도 2월의 주요 기념일로 굳어졌다.

특히 올해는 19년 만에 처음으로 정월 대보름까지 겹쳤다. 최근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일제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날을 어떤 날로 기념해야할지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단 기업의 상술이 깔려 있는 밸런타인데이보다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환기할 수 있는 대보름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수천 년을 걸쳐온 세시 풍속으로서의 대보름이 갈수록 심화되는 개인화, 원자화의 흐름 속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박물관 유승훈 학예연구사는 “정월 대보름 행사는 현 산업사회의 풍속은 아니지만, 달은 여성과 풍요 등 다양한 상징을 함축하고 있고, 갈수록 개인주의화되는 요즘 세태에서 전통적인 공동체성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은 언론광고까지 하며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임을 강조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10일부터 신문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2월 14일은 밸런렌타인데이…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서른 살 청년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 받은 날입니다”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큽니다”는 광고 문고도 눈길을 끈다.

광고 게재 아이디어를 낸 이흥동 경기도교육청 대변인은 “역사 교과서 문제와 일본 아베 총리의 각종 극우 발언이 나오는 상황에서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만 알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광고 게재를 결정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기념일이 겹쳐 화제를 모으는 것이 매출 증가에 도움을 준다며 싫지만은 않은 분위기이다.

통상적으로 기념일이 겹치면 두 번 올 고객이 한 번 오고 말지만 이번은 다르다는 것이다. 밸런타인데이 제품은 2,30대 여성, 대보름 부럼은 40-60대 여성이 주요 고객으로 확연히 구분이 되는 만큼, 기념일이 겹쳐 오히려 매출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롯데슈퍼 최현주 과장은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은 최근에 부각돼 매출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밸런타인데이와 대보름이 겹치는 시너지 효과로 13일과 14일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롯데슈퍼의 경우 13일 전체 매출이 평소 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해와 달리 밸런타인데이와 대보름의 결합을 상징하듯 초콜릿에 땅콩과 호두가 들어간 ‘견과류 초콜릿’이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기업의 상술 속에 자리를 굳힌 밸런타인데이에 대해 전통의 대보름, 민족주의 역사를 상징하는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 등 다른 기념일이 도전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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