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인터뷰에 앞서 작은 소동이 먼저 벌어졌습니다. 야외에서 진행된 회견 장소에 햇살이 너무 강했던 탓이었습니다. 때문에 이상화는 올림픽을 마친 첫 소감만 말한 뒤 "너무 뜨거워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곧바로 체육회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그늘 쪽으로 자리를 다시 마련했습니다. 당초 이상화가 앉았던 자리는 체육회가 인터뷰를 준비하던 아침 이른 시간에는 해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각이 오전에서 정오로 향하면서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에 취재진도 분분히 일어나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선수단의 첫 메달리스트, 첫 인터뷰라 생긴 해프닝이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니 모태범(25, 대한항공)이 메달을 따냈으면 전날 인터뷰가 먼저 진행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이에 이상화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되게 어려워요"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 쇼트트랙은 세계 강국이었잖아요. 그걸 토대로 전통을 받아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것 같다"며 답변을 풀어가더군요.
하지만 이상화는 곧 "거기에 비해 스피드스케이팅은 약간..."까지 답하더니 "어렵다"며 말을 끊었습니다. 다시 "근데 같은 빙상 종목에서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중 한 종목이 잘 해주면 거기에 자신감을 얻어서..."라고 답을 이어가던 이상화. 그러나 또 다시 "너무 어려워요"라며 입을 다물었고, 보충 질문을 받은 뒤에도 "그건 너무 어려워요"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사실 이상화는 어떤 질문에도 당차고 똑부러지는 인터뷰 솜씨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날 뒤이어 받은 5월 결혼설에 대한 질문에도 이상화는 차분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건 아닌 것 같다"면서 "1000m 경기 전에 기사를 접했는데 1000m도 중요한 종목이고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추측성 기사들이 많이 나와서 많이 놀랐고 당황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결혼 계획에 대해서도 "아직 향후 계획을 생각해본 적 없다"면서 "올림픽에 집중했지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워요"라고 단숨에 답변했습니다. 당황스러웠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조리있는 답변이었죠.
그런 이상화지만 왜 한국 빙상이 강한지는 대답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저 역시 한국 빙상이 강한 이유를 쉽게 떠올리기 힘듭니다. 단순히 선수들의 피나는 훈련,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이렇게 말하기에는 환경과 저변이 상대적으로 너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풍족한 인프라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나라 시스템이, 링크장 환경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거기에 맞게 운동해야지. 저 또한 부럽긴 해요. 시스템들이, 그런 건 부러워요."
이상화는 올림픽 전 소치 빙상장의 얼음에 대해 "썩 좋지 않다"면서 "그러나 태릉에서 단련을 해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태릉선수촌의 시설이 좋지는 않다는 뜻일 겁니다.
윤재명 쇼트트랙 대표팀 총감독의 하소연도 생각납니다. "국가대표는 물론 일반 선수들도 매일같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훈련 준비를 한다"고 했습니다. 빙상장이 부족해 대관을 하려면 새벽 5시나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훈련할 수 있는 네덜란드 등 빙상 강국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죠.
이런 환경에서도 빙상 강국 코리아를 일궈낼 수 있다는 것. 정말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까요. 그래서 세계에서 얼음판에서는 가장 빠른 여자 이상화도 그 까닭을 도저히 모르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4년 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인데도 말이죠.
이런 척박한 현실에도 전 세계와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불의의 실수로 안타까움에 잠 못 이루는 그들에게 생각 없이 비수처럼 던지는 악플 대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