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를 비롯해 김해진(과천고), 박소연(이상 17, 신목고) 등입니다.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대회 금메달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고, 그런 김연아를 보고 자란 이른바 '김연아 키즈'들은 첫 올림픽 무대입니다.
김연아야 한번 경험이 있는 만큼 여유가 있습니다. 매일같이 훈련에 매진했던 밴쿠버 때와 달리 이번에는 훈련 대신 휴식일을 갖고 다른 종목이 열리는 경기장을 찾아 응원도 합니다.
반면 첫 올림픽인 김해진, 박소연은 모든 게 새롭기만 합니다. 김해진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을 선수촌에서 만나면 신기하다"면서 "이상화 선수와도 인사했다"며 한껏 고무된 표정입니다. "공식 훈련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도 신기하고, 링크 가장자리에 그려진 오륜기를 보니 이게 올림픽이구나 실감이 난다"고 합니다.
박소연도 "조금 떨리고 긴장도 된다"면서 "처음 경험하는 선수촌 생활도 좋다"고 첫 올림픽의 설렘을 드러냅니다. 경기가 열릴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훈련을 마친 뒤에는 "특별히 느껴지진 않지만 (얼음이)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 "메인 링크는 점프는 잘 됐지만 스피드가 안 나서 좀 불편했다"며 제법 평가도 내놓습니다.
일단 박소연은 울상입니다. "2조에 해진이랑 같이 들어가면 좋을 텐데 저만 1그룹에 있으니까 아쉽고 속상하기도 했어요. 원하던 2번이긴 하지만 (경기 초반 하위 랭커들에 대해) 심판 점수가 박하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잘 해도 점수를 조금 잘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잘 하고 싶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2조가 간절했는데 많이 아쉽죠."
그래도 17살 소녀답게 깜찍하게 풀어버립니다. "해진이한테 '너는 좋겠다'고 했더니 '나는 5번이야' 하더라고요.(정빙 이후 이후 뒤쪽에서 경기해 상대적으로 얼음판이 손상돼 다소 불리하다는 뜻일 겁니다.)"라면서 박소연은 "그래서 서로 좋은 쪽으로 얘기해주고 있어요"라고 밝게 웃습니다.
사실 두 선수가 메달을 기대하고 소치에 온 것은 아닙니다. 목표는 20일 쇼트프로그램에서 상위 24명 안에 들어 다음 날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하는 것. 올림픽 2연패가능성이 높은 김연아에 비하면 소박한 목표입니다. 일단 경험을 쌓은 뒤 2018년 평창올림픽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4년 전 밴쿠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당시 김연아는 후배 곽민정(20, 이화여대)과 함께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곽민정 역시 메달보다는 경험을 쌓는 것을 목표로 출전했고, 사상 첫 금메달을 차지한 김연아에 이어 최종 13위로 올림픽을 마무리하며 다음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뒤 소치올림픽에서 곽민정은 없습니다.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냈던 곽민정은 이후 부상과 체형 변화 등으로 긴 휴식기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피겨를 그만 두고 스키 코치를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어쨌든 4년 전 밴쿠버에서 포스트 김연아를 꿈꿨던 피겨 유망주 곽민정은 현재 없습니다.
그 덕에 한국 피겨도 4년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연아의 존재감은 더 커진 느낌입니다. 올림픽 출전권이 1장 늘어난 것도 김연아가 지난해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4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김연아는 더 이상 없습니다. 혼자서 한국 피겨를 끌어주고 밀어주던 피겨 여왕은 왕관을 내려놓은 지 한참 뒤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김해진과 박소연의 어깨는 더 무겁습니다. 김연아가 없어도 한국 피겨를 짊어지고 갈 쌍두마차가 돼야 하는 겁니다.
아직까지 두 선수는 김연아에 적잖게 의지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두 선수는 "연아 언니가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씀해준다"면서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박소연은 "연아 언니를 보고,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것만으로도 다 공부가 된다"면서 "또 가끔 해주는 조언에 크게 힘이 난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만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제 두 선수도 김연아 이후를 준비할 때입니다. 김연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야 4년 뒤 평창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유망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김해진이 6위, 박소연이 9위에 올랐습니다. 16, 17살이던 2006, 2007년 이미 시니어 무대를 정복하기 시작한 김연아와는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몇 십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 인재인 김연아와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김연아 홀로, 그리고 가까스로 일으켜낸 한국 피겨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소치올림픽은 '포스트 김연아' 들에게 가장 큰 기회입니다.
이번 대회 피겨에서 국내외 팬들의 관심은 여왕의 화려한 마무리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김해진, 박소연의 올림픽도 그에 못지 않은 소중한 의미를 지닙니다. 김해진과 박소연, 두 유망주가 '김연아 키즈'의 오랜 꼬리표를 떼고, 껍질을 깨고 날아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예전 포스트 김연아의 전철을 밟게 될지. 과연 이들이 4년 뒤 평창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지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