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외국어대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예비 대학생 10명이 숨지고 103명이 다친 이번 사고는 근래 들어 보기 드문 '대형 사건'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러한 대형 사건이나 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원년인 지난 1993년부터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매몰되다시피 했다.
10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 한 사건들이 자고 나면 발생했고, 평상시 같으면 상상 못할 너무나 특이하고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흰 눈 위에 다시 흰 서리를 더한다'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은 당시 가장 흔히 쓰이는 사자성어였다. 본격적인 민주화 시대가 개막되면서 권력형 비리에 사건사고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칠 새가 없었다.
인기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94’에도 등장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이 당시 대형 사고의 결정판이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전조'들은 쉴 새 없이 경고음을 날린 것도 사실이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추려봐도 끝이 없다.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점포 가스 폭발 붕괴사고=김영삼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충북 청주시 우암상가 아파트 내 점포에서 가스가 폭발해 아파트 전체가 붕괴됐고 3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구포 무궁화 열차 전복사고 =1993년 3월 28일 부산시 구포역 입구에서 철길 지하 굴착공사로 인한 지반 붕괴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돼 승객 78명이 숨졌다.
아파트가 무너지고 열차가 전복하는 사고를 접한 부산 시민들은 어리둥절하며 공사 인부들의 실수 때문에 발생한 사고인줄로만 알았다.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같은해 9월 26일 김포를 출발해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 국내선 항공기가 우중에 목표물을 잘못 알고 해남 화원반도의 산에 추락해 승객 66명이 숨졌다.
목포 비행장은 해군의 간이 비행장으로 활주로도 아주 짧고 주변에 2,3백 미터의 야산이 있어 공항으로서의 문제가 심각한 곳이었으나 민간 공항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였다.
△격포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그리고 보름이나 지났을까.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 격포와 위도 사이를 운항하던 정기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격포 인근 해역에서 침몰해 배에 타고 있던 승객 292명이 익사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바다 낚시꾼들이 많이 타고 있다가 변을 당하기도 했지만 쿨럭(고기를 담는 가방)에 의지해 표류하다가 구조된 승객들도 많았다.
특히 당시에 KBS는 위도 부두에 방치한 시신을 헬기에서 찍은 동영상을 그대로 내보내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훼리호는 정원을 훨씬 초과한 승객을 태웠다가 배가 기울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접한 국민은 아연실색했다. 인도나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가 어쩌다가 문민정부라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 자조와 비아냥거림이 여론을 주도했다.
물론 인재였다. 1993년은 공직자들에게 첫 적용된 재산공개법에 따라 수많은 장관과 차관급 고위공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옷을 벗었으며, 비리 사건 수사의 제물이 된 고위 관료들도 많았다.
그렇게 YS의 취임 첫 해인 1993년은 지나갔다. 더 이상 우리의 가슴을 철렁하게 쓸어내리는 사건은 없겠지 내심 기대도 했지만, 무참하게 무너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포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이듬해인 1994년 12월 7일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소재 가스 중간 기지가 폭발해 12명이 사망하고 1명 실종됐으며, 65명이 다치는 인명 피해와 함께 인근 지역이 온통 불바다가 된 대형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마포경찰서 건너편 아현동 일대가 2,3시간이나 불에 타는 엄청난 화재였다. 텔레비전 그림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장면이었다고 당시 방송기자들은 얘기했다.
다리를 통과중인 시내버스와 승용차들이 강으로 추락해 여학생 등 32명이 숨졌다. 성수대교 시공사였던 동아건설(당시 최원석 회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그 이후 쇠락의 길로 들어선 시발점이 됐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서울시장이 경질돼 최병렬(당시 민자당) 의원으로 바뀌었고 서울의 모든 한강 다리를 비롯해 전국의 대형 교량들에 대한 안전점검이 실시됐다. 서울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 합정역 구간이 철거돼 3년 동안 제구실을 못하기도 했다.
△충주호 포구 유람선 화재 사고=사흘뒤인 10월 24일엔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충주호를 운항하던 유람선에서 화재가 발생해 침몰했다. 사망자만 30여명이나 됐다.
이 철판 덮개가 부근을 지나던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혔는가 하면 차량들이 공사장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98명의 사망자와 14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같은해 6월 29일 삼풍 백화점이 붕괴하는 건국 이래 최대의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서울지방법원 건너편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건물 철거 장면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폭삭 내려앉은 콘크리드 건물 더미 속에는 쇼핑객 몇 명이 갇혀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창졸간에 당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재난이었다. 두 달 가까이 생존자 구조작업이 진행됐고 사망자만 500여명에 이르렀다.
그 자리에 지금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백화점 측이 무리하게 수영장을 만드는 바람에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한 기둥이 부러지면서 무너졌다는 게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역시 인재였다.
드라마 '응사'에서 여주인공 나정이가 칠봉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달려가 팬들의 가슴을 졸였던 그 장면의 배경이기도 하다.
칠봉이가 변을 당한 줄 알고 오열하다가 길 건너편 그를 발견하곤 포옹하던 장면, 1995년을 산 국민들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1997년 8월 6일 관광객을 싣고 김포공항을 출발해 괌으로 향하던 대한 항공여객기가 괌 공항 인근 니미치힐에 추락하여 228명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승객 중에는 당시 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원내총무인 신기하 의원 부부를 비롯한 신 의원의 광주 지역구 승객들이 다수 포함됐다.
'전조'로부터 비롯된 대형 사고들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1996. 9월에는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 무장간첩 26명이 강릉 경포대 인근 동해안 포구를 통해 침투한 간첩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때 아군과 교전 끝에 26명이 사살되고 1명이 생포됐지만 간첩들을 잡기 위한 군인 수색 작업이 강원도 일대에서 대규모로 실시됐다.
다시 거슬러 1993년 8월 10일 경기 연천에서는 동원 훈련 중이던 예비군들이 포탄 사격훈련을 하던 중 포탄 취급 부주의로 폭발사고가 발생 예비군 19명이 운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군 관련 사고는 전두환 정권 시절 일어난 군인들 사망사고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민 정권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에서 군인들의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군 관련 사고 하나만 거론하자면, 지난 1982년 2월 5일 제주도 한라산에서 작전 훈련 중이던 군용기 1대가 추락해 특수부대 군 장병 53명 모두 숨졌다. 당시 항간에는 전두환 대통령 경호를 위해 제주에 파견된 군인들이 희생됐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잇따라 일어난 기상천외한 대형 사고들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관련자들의 부주의와 부실 공사, 안전 불감증에 의한 것이었던 만큼 ‘인재’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런 사고들로 사회 전체가 뒤숭숭한 와중에 "김영삼 정부의 개혁, 과거사 정화작업이 너무 과도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하늘이 노(怒)했다"는 무속적 분석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재난과 재앙들이 인간의 부실에 의해 초래되고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데 있다. 지난 교훈에서 보듯 경각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건사고는 10년 주기로 터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선의 한 소방대원은 "그럴 일이야 없겠으나 모두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설상가상'(雪上加霜)이 좋지 않은 일의 반복을 일컫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는 그 대척점에 있을 것이다.
부주의와 부실이 없는지, 안전 불감증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경계한다면 하늘도 이를 가상히 여기지 않을까 한다. 그리해야 설상가상의 전조를 극복하고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금상첨화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사전 대응이 중요함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