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전망 '치안·복지'에 구멍…불안감 커져

생활고 비관자살에다 '묻지마 인질극' 잇따라

생활고를 비관해 세 모녀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사흘 만에 강남 한복판에서 '묻지마' 인질극 사건이 일어나자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회 안전망인 치안과 복지 네트워크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민들의 불안감이 함께 커지고 있다.

◇ 묻지마 범죄에 시민불안 증가…예방 대책없나 = 1일 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인 강남 압구정역 인근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남성이 벌인 '묻지마' 인질극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재작년 여의도에서도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는 등 묻지마 범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신이상자들이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의 경우 재범률이 높고 빈도가 증가 추세이지만 예방이 쉽지 않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일 경찰청과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정신 이상 범죄자 3명 중 2명이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검거된 정신 이상 범죄자 중 앞서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사람은 65.8%로 5년전(63.6%)보다 비중이 2.2% 포인트 늘었다.

재작년 정신이상자들이 저지른 살인·강도·강간·방화 등 강력범죄는 501건이다. 2008년(412건) 이후 3년 간 400건대를 나타냈으나 2011년(509건)부터 500건대에 이르렀다. 살인범 중 정신질환자 비율은 2008년엔 3.3%였지만 2012년 4.6%로 뛰었다.

많은 시민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로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부 안말희(58)씨는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사람 많은 빵집에서 인질극을 당하는 나라가 되었나"라며 "겁이 나서 어디 밖에 돌아다니겠나"라고 우려했다.

직장인 김정아(31·여)씨는 "길에서 수상한 사람을 보면 괜히 의심스럽고 무서워서 자리를 피한다"며 "국가가 나서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정신병 또는 중독증 환자들을 중점적으로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경(27·여·취업 준비생)씨는 "사회복지망 부실로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 것 같은데, 약자보호 시스템을 강화해 엉뚱한 피해자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 예방 방안으로 정신 병력이 있는 전과자에 대한 사후 관리 강화를 먼저 꼽았다.

김현정 국립의료원 정신과전문의는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들은 출소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직업 유지의 조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해 관련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소한 전과가 있는 정신 이상 범죄자에 대한 사후 관리만 잘해도 묻지마 범죄를 줄일 수 있다"며 "지금은 전적으로 정신이상자의 가족에게 맡겨놓고 일이 터진 후에 뒷북을 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관련 범죄가 늘어나는 만큼 경찰 내부에 담당 조직을 새로 만들고 인력과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과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해 맞춤형 치안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 복지에도 구멍 숭숭…찾아가는 복지로 사각지대 메워야 = 최근 세 모녀의 비극적인 자살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숨진 박모(60)씨 모녀는 질병으로 수입이 끊겼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의료급여제도 등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의 도움조차 받지 못했다.

이들은 장애인이나 노인,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으로도 분류되지 않아 이와 관련된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강산아(28·대학생)씨는 "사회 복지 혜택이 부실하게나마 있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가지 않았다"며 "관련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상원(30·취업준비생)씨는 "세 모녀 자살사건 같은 문제는 경찰 등 공권력을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예방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복지제도가 철저히 신청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재성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본인이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엔 국가가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다"며 "지원 신청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고 잠재적 복지 대상자에게 관련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번 사건은 한부모 가정 가구주가 소득이 중단된 케이스인데 복지 주무 부서가 이런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소득이 중단된 원인과 이후 생계유지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해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들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가 예산 30%를 복지에 쓴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제도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적 사정과 지자체 특성에 맞춘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외치는 '찾아가는 복지'를 행하려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수를 먼저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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