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로부터 48시간 짜리와 60시간 짜리 근로계약서를 각각 작성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만 해도, A씨는 "왜 또 쓰라고 하지, 남한식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주6일 오전 10시부터 밤 9~10시까지 홀서빙을 하면서 한 달에 받는 돈은 150만원. 쉬는 시간은 따로 없었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탈북자보다 10만원이 많은 액수라 고마웠다. 잘해야 최저임금에 턱걸이인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일한 지 3개월 여가 지나고 주위 친구들과 직장 환경을 비교하면서였다.
"어떻게 탈북자가, 그것도 남한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 나같이 물정 모르는 같은 탈북자의 등을 칠 수 있나 싶었다". 배신감을 느낀 A씨는 B씨에게 따졌지만,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최소 6개월 동안 같은 직장에서 일해야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만두면 당뇨병을 앓고 있는 북쪽의 부모님에게 돈을 부칠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A씨처럼 기존 탈북자에게 존경심을 갖고 식당에 취직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6개월만 채우고 그만뒀다. 탈북하자마자 첫 직장으로 식당을 찾았다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다. 한 40대 탈북 여성은 "손님들이 남긴 반찬을 다시 내놓고, 조미료를 안 쓴다고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펑펑 쓰는 것도 꺼림칙했다"고 말했다.
◈ "계약서 두개 쓰라고 해서 남한식이라고만 생각했다"
A씨는 탈북자를 고용하면 고용주가 5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도 매우 속상했다고 한다. 2개 계약서에 대한 의문도 이때쯤 풀렸다. 또 다른 계약서는 다른 곳에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60시간 계약서가 그나마 실제 업무 시간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주 40시간 노사양자가 합의해도 최대 52시간인데, 60시간 계약서는 초과근무에 대한 연장수당 요구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초과근로에 대한 연장수당이 150만원에 포함됐다고 쳐도 A씨가 실제 일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시급이 최저임금 아래로 내려간다.
여기에 B씨가 일주일에 한번씩 직원들을 모아놓고 하는 설교 아닌 설교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북한식 '생활총화'나 다름 없었다. A씨는 "뭐를 잘했고 뭐는 잘못했고, 이런 식으로 한명 한명 지적하는데, 자아비판만 없었지 북한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고 했다.
A씨가 그만둔 뒤 B씨는 남은 직원들의 월급을 올린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A씨가 노무사 등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60시간에 대한 최저임금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한 노무사는 "A씨가 그만 뒀다고 하더라도 연장수당 미지급 분을 받을 수 있다"면서 "식당에서는 종종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식당의 경우 직원 대부분이 탈북자이고 첫 직장이다보니, 물정을 모르고 더 심하게 당했던 듯 하다"고 말했다.
B씨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중계약서를 쓴 일도 없고 최저임금을 계산해서 지급했다"며 "험담하는 소리를 믿지 말라"고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