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 없었지만 지방·젊은의사 적극 참여(종합)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발해 집단휴진에 들어간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창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대한의사협회가 14년 만에 강행한 10일 하루 집단 휴진 결과, 우려했던 의료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상당수 동네 의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특히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중견 의사들보다 젊은 의사들에서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의원 파업 참여율이 정부 집계로 30%를 육박했다.

파업 강행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엄정 처벌 방침을 재확인함에 따라 강대강 분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수도권보다 지방, 막내 의사들 참여... 정부 강경대응에 마음 굳혀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10일 정오를 기준으로 전국의 동네의원, 즉 개원의 2만8,691곳 중 8,339곳이 문을 닫아 평균 휴진율이 29.1%로 조사됐다. ·

서울의 경우 7,627곳 중 1,499곳이 문을 닫아 휴진율이 19.7%로 조사됐으몀, 경기도는 6,159곳 중 1,739곳이 문을 닫아 28.2%의 휴진율을 기록했다.

부산, 경남, 제주, 세종시 등의 파업 참여율은 50%를 넘기거나 육박하면서 두드러졌다.

부산의 경우 의원 2,115곳 중 1,152곳이 문을 닫아 휴진율 54.5%를 보였다. 경남은 1,469곳 중 713곳이 휴진해 48.5%를 기록했으며, 제주는 334곳 중 165곳(49.4%), 공무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세종시는 58곳 중 38곳(65.5%)이 문을 닫았다.


이밖에 충남 48.4%,강원도 36.4%,충북 34.2%의 휴진율을 기록했으며, 대구 34.9% 인천 36.7%, 대전 27.3%, 울산 12.1%, 광주 10.0%를 보였다.

수도권보다 각 지역에서 파업 참여가 두드러진 것은 원격의료, 병원의 영리 자회서 허용 등 정부 정책이 수도권 중심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체 파업률 30%는 적지 않은 수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의약분업 때 파업률이 20%대였던 것에 비하면 낮은 수치는 아니다.

이날 막내급 의사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1만7천여명 중 7,200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정부와 검찰이 의사면허 취소까지 언급하면서 압박해오자 오히려 젊은 의사들 사이에 반발이 커져 막판에 파업에 합류했다. 막내들의 동참은 선배 의사들에게도 자극이 됐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경희대의료원, 고려대의료원, 순천향대병원 등 63곳의 전공의들이 하루 일을 하지 않고 대국민 홍보를 벌였다.

송명제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으름장을 무서워하지 않겠다"면서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료하고, 의료 윤리적으로 바른 길을 가고 싶다"며 파업 동참 배경을 설명했다.

중앙대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 서곤씨는 "우리는 상식적으로 국민들 진료하고 싶다. 국민이 아프면 먼저 시진, 청진, 타진, 숙진 등의 검진을 하도록 배웠다"며 "건강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정부 당국자와 의료인간의 시각이 왜 다른지 알 수 없다"고 원격의료 등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 박 대통령 엄정대응 천명, "집단 이기주의로 개혁 반대 안돼"

사진=청와대 제공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의사들의 집단휴진 사태와 관련해 법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임을 천명했다. 집단 이기주의로 정부의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공식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1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 행동 움직임이 있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건강과 생활에 밀접한 분야에서 국민을 볼모로 집단 행동을 해서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의사들의 집단휴진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에는 적극 나서겠지만 비정상적인 이익을 추구하거나 명분 없는 반대로 국민 피해를 주는 데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법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에 파견한 공무원들과 각 시도 보건소 직원들을 통해 파업에 참여한 의료기관에 대한 채증 작업에 나섰다. 공무원들은 진료명령서와 업무개시명령서를 전화 또는 서면으로 전달하고 휴대폰 촬영 등을 통해 문을 닫았는지를 확인했다.

휴진한 의료기관이 수천 곳에 달하는 만큼 일괄적으로 행정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파업을 주도한 몇몇 의료기관을 타깃으로 삼아 업무개시명령서를 보냈다.

명령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15일의 업무중지와 함께 형사 고발까지 할 방침이다.

◈ 보름간 파업 숨고르기, 물밑 협상에 난항 예상

이날 하루 파업이 마무리됨에따라 의협은 11일부터 23일까지 '준법진료'를 벌이기로 했다. 이는 환자 1인당 15분씩 진료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합법적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진료만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이 정상 영업을 할 것으로 보여 파업이 보름간 유보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봐도 무관하다.

이 기간동안 의협은 대국민 홍보와 함께 정부 여당을 상대로 물밑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원격의료 입법을 연기하고 시범사업을 명시하는 것 등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 의협 집행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대화 재개에 난항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환규 회장을 필두로 한 현 집행부는 정부와의 협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뒤집었기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며 "현 집행부와 대화를 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보름여 기간동안 협상 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협은 오는 24일부터 엿새간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이때는 응급인력과 필수인력 등도 모두 파업에 동참해 투쟁 수위를 높이게 된다. 하지만 정부 협상에 진전이 있거나 일반 여론 및 내부동력이 충분히 모아지지 않을 경우 파업을 유보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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