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아베 내각이 추진중인 고노담화 검증이 담화 수정을 전제로 한 것이냐는 질문에 "고노담화 수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명확히 답변했다.
사실 고노담화 검증과 수정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애초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요미우리, 산케이 등 일본 보수 언론과 우익야당인 일본유신회는 고노담화의 수정을 아베 내각에 요구하면서 그 1단계 작업으로 검증을 촉구했다.
스가 관방장관도 지난달 28일 고노담화를 검증할 조사팀을 정부내에 설치하겠다고 밝힌 뒤 조사팀의 검증 결과에 따라 고노담화를 대신할 새로운 담화를 낼지에 대해 "어떻게 할지 충분히 검토하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런 스가 장관이 열흘만에, 본격적인 검증을 시작하기도 전에 담화 수정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아베 내각이 고노담화 수정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고노담화 검증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윤병세 외교장관이 유엔 무대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등 최근 한국 정부가 담화 검증에 강하게 반발한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한국이 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삼고 있는 군위안부 문제를 건드려서는 아베 내각 출범이후 한차례도 열리지 못한 한일정상회담 전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아베 총리 등이 의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때마침 오는 12일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외무성 사무차관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아베 총리의 외무성내 최측근인 사이키 차관이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 등과 만나면 이달말 핵안보정상회의 등 계기에 한일 정상간의 정식 또는 약식 회담을 갖는 문제에 대해 운을 뗄 공산이 커 보인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기 앞서 한일관계의 파국을 초래할 고노담화 수정에는 일단 선을 그어둘 필요를 느낀 것으로 관측된다.
또 4월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연쇄방문을 앞두고 일본에 한일관계 개선을 강하게 주문해온 미국 정부의 입장, 작년말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미국 의회와 언론의 따가운 시선도 고노담화 수정불가론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달 24일 아베 총리의 역사관에 대해 "미국인의 생각과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자 사설을 통해 아베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가 역내에 '위험한 도발'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더해 근본적으로 아베 정권이 고노담화를 부정할래야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은 애초 고노담화 검증을 거론할 당시 1993년 담화 발표에 앞서 일본 당국이 청취한 한국인 피해자 16명의 증언이 물증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면서 증언의 사실관계와 한일 당국간 담화 문안 조정 여부 등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피해자들 기억의 오류 등에 따른 '디테일'을 문제삼아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2007년 제1차 아베 내각 당시의 각의(국무회의) 결정 내용을 확인하려는 의중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고노담화에서 애매하게 거론된 일본군과 관헌의 군위안부 강제연행은 스마랑 사건(인도네시아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이 1944년 네덜란드 여성 등을 연행해 자바섬 스마랑 근교에 억류하고 군위안부로 삼은 사건) 재판기록 등에서 명확히 드러난 사실이다.
아베 내각이 한국인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설사 오류를 찾아내더라도 스마랑 사건 기록 등 문서에 적시된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고노담화 수정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었던 셈이다.
결국 아베 내각은 담화 수정은 포기하는 대신 담화 작성 과정에서의 문제를 찾아내는 등 '흠집'을 냄으로써 고노담화의 힘을 빼는 쪽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