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우아한 거짓말'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가해자 학생 집에 찾아가 한번 안 뒤집어?'

오히려 관객이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우아한 거짓말'(감독 이한)은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아무런 예고(?)없이 죽은, 어린 딸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지도 않고, 그저 "나쁜년"이라고 독하게 한마디 날릴 뿐이다.

살아남은 큰딸 만지(고아성)를 위해서라도 씩씩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엄마 현숙(김희애)은 평소처럼 대형마트에서 두부를 팔다가 뒤늦은 점심을 허겁지겁 먹는다. 그러다가 "어린 딸이 죽었는데도 이렇게 입으로 밥이 들어간다"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꾹 삼킨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려령의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우아한 거짓말'은 동급생의 지속적인 은따(은밀한 왕따)에 상처 입은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살아남은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현재진행형인 민감한 청소년문제를 다뤘지만 격앙된 목소리로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다소 담담한 어조로 진실을 추적하며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상처, 고통을 어루만진다.

나아가 따뜻하고 성숙된 시선으로 폭력적 일상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물 한 방울 머금고 묻고 그 해결의 답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지난해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소원'처럼 소통과 관심, 이해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동생 천지(김향기)의 갑작스런 자살 이후 만지는 천지의 흔적을 좇는다. 동생과 친한 사이로 알려진 화연(김유정)을 만나 탐색전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절친'인 미란의 여동생 미라(유연미)도 천지와 한때 각별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뒤늦게 자신의 무심함을 확인하게 된 만지가 천지의 흔적을 좇으며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데, 그 과정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작은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드러난다.

천지의 죽음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래서 더 잔인한 일상이 전개되는 중에 마치 양파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이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음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유아인이 연기한 이웃집 괴짜청년 추상박이나 남편과 사별한 현숙의 전 남자친구로 등장한 성동일의 생활 연기가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런 이야기와 큰 충돌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는 산 자와 죽은 자, 두 가지 시점에서 천지와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사건과 감정의 변화를 관조한다. '죽은 자'인 천지의 고통스런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은 동시에 남은 자들이 후회하고 슬프하고, 아프게 성장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세상을 흑백논리로 보지 않고 사건 이면에 얽힌 복잡한 인간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낸 것이 무엇보다 놀랍다. 동시에 무심코 던진 말과 일상의 풍경에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우리사회의 편견과 이기심을 포착해낸다.

어린 딸이 죽어 애간장이 녹았을 현숙에게 이사를 종용하는 집주인의 야박한 인심이라든지 화연의 엄마가 이웃이 된 현숙에게 딸 소식을 들었다고 운을 떼면서 '단명할 운명'을 운운하는 순간이 그렇다.

현숙이 화연의 엄마에게 화연이 천지를 괴롭힌 증거인 MP3를 내놓자 그것을 휴지통에 슬그머니 버리는 장면에서는 제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의 동물적 본능이 엿보인다.

정작 딸의 행실을 비난하면서도 왜 그러고 다니는지 이유를 들여다볼 심적 여유는 없으면서 말이다. 그는 비극적 사건에 앞서 현숙이 "딸을 영특하게 키우되 영악하게는 키우지 말라"며 따질 때도 "곰처럼 키우는 것 보다는 낫다"며 맞섰다.

타인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화연의 불안한 심리와 화연의 은따에 동조하던 반 친구들이 정작 천지가 죽자 화연을 가해자로 낙인찍고 자신들은 발을 쏙 빼는 모습도 눈여겨볼만하다.

그렇게 화연은 가해자에서 한순간에 피해자가 되는데 이는 누구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고통을 당한 자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걸까? 이 영화에서 상처입힌 자를 용서하는 유일한 사람은 먼저 생을 마감한 천지다. 동생을 잃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 만지는 동생을 삶의 절벽으로 내몬 화연에게 뒤늦게 연민을 느낀다. 현숙은 부모에게 방치된, 어린딸의 자살에 일조한 미란 미라 자매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을 해먹인다.

만지가 화연의 아픔을 끌어안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꾸는 단꿈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이는 살아남은 자의 간절함이 빚어낸 잔인한 꿈이다.

달라진 만지가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입에 머금는 미소는 고통 속에 피어난 찬란한 꽃이다. 이 영화가 소중한 가족들에게 "잘 지내냐?"고 관심을 기울이며 물어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김려령 작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인데 어쩌면 그토록 모를 수 있을까"라는 심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모르면 알아야 하고 알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가 용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행위를 가한 이는 그것에 대한 충분한 책임을 져야하고, 이 역시 성장의 일부다. 가장 급한 것은 바로 이 아프고 상처 입은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이다. 어른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줘야 한다."

앞서 이창동 감독은 영화 '시 '에서 성폭력 가해자 학생들의 잘못을 묻지않고 위로금으로 합의를 보고 대충 넘어가는 어른들의 행동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결정인지 물었다.

이정향 감독은 '오늘'에서 가해자의 진정어린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피해자의 용서가 어떤 비극을 낳을수 있는지 보여줬다.

피해학생의 아픔을 이해하고 가해자의 잘못을 인식시키고 책임을 지우는것이 학력폭력을 해결할 근본적 대책이 아닐까. 무엇보다 어른은 자기자신을 돌아봐야 할것이다. 시쳇말로 요즘 애들이 이상하고 무서운 것은 어른들이 이상하고 팍팍해진 영향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니까.
12세 관람가, 117분 상영,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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