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대통령이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에 처음으로 입을 연 배경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국정원의 혐의가 해명되기보다는 점점 짙어지는 쪽으로 가고 있고 국민의 의혹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면 검찰의 신뢰도 크게 흔들리고 공안정국이란 카드가 효력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정권과 관련해 벌어진 최초의 증거조작 사건으로는 최능진 사건을 들 수 있다. 최능진 선생은 안창호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2년 간의 감옥생활을 하고 해방 후 평남지역 건국준비위원회 치안부장을 맡아 경찰에 투신했다. 그러다 소련군과 김일성을 피해 월남해 미군정 경무부 수사국장을 맡았다. 그런데 경찰국 내부에 친일파가 득실대는 것을 보고 ‘친일부패 척결’을 외치다 쫓겨났다.
최능진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을 규탄하며 1948년 5.10 총선거 때 이승만 후보에 맞서 국회의원 동대문 갑에 출마입후보 했다. 그러나 친일 경찰이 나서 최능진 후보 추천인들에게 압박을 가해 자신들이 '추천하지도 않았는데 추천도장이 찍혔다'는 허위진술을 받아낸 뒤 입후보를 무효화시켰다.
그 뒤 이승만 정권은 최능진 선생이 국군 내부에 혁명군을 조직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고 사건을 조작해 징역 5년 형에 처했다. 그리고 6.25전쟁 때 최능진 선생이 주도한 반전평화 운동을 빌미로 이적행위자로 몰아 조작된 증거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했고 곧 사형이 집행됐다. 이를 주도한 건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인 김창룡 등이다. 2009년 9월 진실화해위원회가 부당한 죽음으로 결정한 사건이다.
◈수술이 필요한 자리에 파스 바르고 넘어가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의 증거조작 위조 의혹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정확하게 밝혀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하며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다”.
분명히 할 것은 증거 조작과 간첩 조작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애당초 간첩 사건 자체를 조작했느냐’와 ‘간첩을 잡으려다 보니 미비한 증거를 조작하게 됐다’는 시작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 때 제기된 부실과 의혹, 국정원 선거 개입과 그 배후를 캘 국정조사, 국회특위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이 중요하다. 야당마저도 증거조작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그러니 과연 얼마나 믿어야 할 지 고개가 저어진다. 대통령선거에까지 개입한 국가정보기구의 타락과 부패는 대수술을 응급으로 해야 할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다는 암 덩어리로 생각하고 겉핥기식이 아니라 확확 들어내는 데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으면 한다”고 했다. 또 “IT강국에서 정보보호가 왜 이러냐, 어떻게 보안에 대해서 투자도 안 하고 보안이 지켜지길 바라느냐”고 강조했다.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개인정보 해킹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와 국기를 뒤흔든 사건이다. 대수술을 응급으로 실시해야 할 상황에 수술은커녕 파스 몇 장 바르고 넘어가면 안 된다. 국정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이 제시한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그 발언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