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총장은 '장독' 깨지 않고 '쥐' 잡을까?

간첩 증거조작 최소한 수사책임자인 단장급 이상이 개입한 듯

김진태 검찰총장 (자료사진 / 윤창원기자)
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서를 위조했다고 시인한 '국정원 협력자' 김모(61)씨를 12일 체포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위조 사문서행사'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져 간첩증거 조작사건과 관련 첫 사법처리 대상자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힌 만큼, 김씨가 구속되면 현 단계에서 위조 사문서 행사의 공범관계에 있는 국정원 직원도 잇따라 소환돼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국정원이 어느선까지 개입해 '민간 정보요원'인 김씨에게 간첩사건 피의자 유우성씨(34)에 대한 위조 문서를 구해 오도록 지시했는 지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씨와 같은 간첩 혐의 사건은 국정원 대공수사국장(1급, 정부 부처 차관보나 실장급) 아래 있는 단장이(단장은 2급)책임을 지고 수사를 지휘하며 대공수사국장은 직접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총괄하는 구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 직제는 대외비이기 때문에 몇 개의 단이 운영되는 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경우, 국정원 내부에서 문서 위조에 대해 수사팀을 지휘한 단장은 최소한 항소심 증거로 제출한 문서조작 사실을 인지 또는 지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진상조사에서 수사로 전환하고 곧바로 국정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도 최소한 단장급 이상의 개입을 포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유 씨의 간첩혐의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내사(수사 전단계)에 들어가 장기간에 걸쳐 이번 사건을 조사 해왔다. 그런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국정원에서 '간첩사건'의 무죄는 중대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간첩사건의 무죄는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와다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면서 "피의자 유우성씨에 대한 무죄는 대공수사국장뿐 만 아니라 차장, 국정원장에게까지 무죄 경위에 대해 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간첩사건의 무죄는 증거서류 위조여부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대공수사국장이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 년 간에 걸쳐 공들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자 충격에 빠진 국정원이 무죄 경위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보다는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를 끌어내기 위해 무리수를 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수사실무진에서는 유우성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말이 안되는 일이라며 새로운 증거를 제출해 유죄를 받아내겠다고 자신했을 것이고 지휘부는 이를 묵인 내지는 방조한 결과가 증거조작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간첩 증거조작에는 최소한 수사책임자인 단장급 이상이 개입했을 것이고 정무직인 차장이나 원장도 최소한 지휘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정원의 수뇌부가 증거조작을 직접 지시 하지는 않았더라도 조작 경위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커지는 대목이다.

자료사진
◈김진태 총장의 장독 깨지 않고 쥐잡는 '장독론' 통할까?

이처럼 국정원 지도부의 연루 의혹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61)와 그를 접촉한 '김사장(또는 김과장)'이라는 가명의 국정원 직원, 그리고 중국 선양총영사관의 이인철 영사 등에 대해 잇따라 사법처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이 과정에서 국정원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방식보다는 국정원이라는 조직과 직원들의 범법행위를 분리해내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 김진태 총장은 최근 "쥐를 잡을 수 없다면 독을 깨야겠지만, 독을 깨지 않고 쥐를 잡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른바 '장독론'을 설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국정원의 문서조작 사건을 검찰 조직과 국정원 조직이 맞붙는 양상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평소 주장해왔던대로 '외과수술식' 수사방식을 통해 국정원과 개별 범죄를 분리해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김 총장의 '장독론'은 작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면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가 쫓겨 나는 등 검찰 조직의 피해가 큰 데 따른 '반작용'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직간 대결의 양상으로 비춰지거나 그런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면서 "그렇다고 범죄혐의에 대한 타협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의 이같은 태도는 국가기관이 문서를 조작해 사법체계 근간을 흔든 초유의 범죄수사를 하면서 미리 범위를 한정해놓고 수사를 하는 것처럼 비쳐질 소지도 높아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더욱이 국정원은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보도자료까지 냈지만, 범죄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아직도 "우리도 속았다"며 꼬리자르기에 급급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검찰이 '공범'이기 때문에 수사를 주저한다는 인상을 주기 쉬울 것이다.

늦었지만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검찰이 김진태 총장의 말대로 장독을 깨지 않고, '간첩사건 증거조작'이라는 국민적 의혹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미 법조계 주변에서는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이 잘짜여진 각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파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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