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증거조작, 검찰도 책임져야

[노컷사설]

지난 1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의혹 규탄!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기자/자료사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실체가 점입가경이다.

뒤늦게 검찰이 국정원에 칼자루를 들이대고 수사의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검찰이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국정원이 이번 조작 사건의 주연이었다면 검찰은 국정원의 충실한 하수인 역할을 하며 조작을 방조한 조연이 아닌가?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문서가 중국에서 정상적으로 입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판 내내 합법적으로 문서를 얻은 것처럼 거짓말을 일삼았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고 이것을 감추기도 했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말한 이 사건 당사자 유우성씨 여동생의 진술은 결정적 증거였는데, 이 동생이 나중에 검찰에서 ‘국정원에서 한 말은 거짓진술’이라고 번복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담당 검사는 오히려 ‘그렇게 진술하면 안 된다. 그러면 도와줄 수 없다’며 회유했다고 한다.

진실을 가려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검찰이 국정원에 맹종하며 아바타 노릇만 한 것이다. 간첩사건이나 공안사건에서 검찰의 이 같은 처신이 이번 뿐 이었겠는가 하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미덥지 않다. 검찰은 진상조사팀을 구성한 뒤에도 증거조작 의혹제기에 ‘절차적 문제일 뿐’이라며 여전히 국정원을 두둔했다.


국정원 협력자의 자백 이후에야 뒤늦게 정식 수사로 전환하더니 대통령의 엄정수사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매번 뒷북치기에 청와대 눈치 보기로 스스로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그렇기에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특검을 주장하는 것 아닌가?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단순히 국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사건이다. 단순히 일선 검사의 실수나 부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 조항에 따르면 간첩죄로 다른 사람을 처벌받게 하려고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하면 간첩죄와 같은 처벌을 받게 돼있다.

이번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미 여러 의혹이 제기됐고, 1심에서 무죄가 나면서 파장이 확산됐기 때문에 검찰 수뇌부가 사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정말 몰랐다면 그것도 문제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며칠 전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뿐이다.

사법처리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검찰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검찰 내부의 불거진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의지가 없는 지 정권의 눈치를 보는 지 알 수 없다. 이래서는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고, 국정원에 대한 수사도 어떻게 진행돼든 꼬리자르기식이라거나 짜맞추기식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총장이 제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사과와 함께 검찰 내 사건 지휘라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문책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그래야 국정원 수사도 떳떳해지고, 권력의 보이지 않는 입김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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