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반세기 만에 '東西 신 냉전 시대' 도래하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크림공화국과 합병 조약을 전격 체결함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크림공화국이 러시아로 합병될 경우 러시아의 84번째 연방주체(자치행정지역)가 된다.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하게 되는 사례다.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립으로 ‘동서 신(新) 냉전(New cold war)’ 시대가 개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푸틴의 이번 합병 조약 서명을 소련 해체 이후의 국제 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규정하며, 사실상 신냉전 시대의 개막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와 크림의 러시아 합병 조약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조약 서명에 앞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크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러시아의 일부였으며 러시아의 구성원으로 강력하고 안정적인 자주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크림자치공화국이 편입요청을 한 바로 다음날 조약을 체결하는 신속성을 보였다.

이번 합병 조약은 러시아 헌법재판소의 승인과 상하원의 비준을 얻어 발효된다. 현 상황에서 비준안이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없으며, 그동안 크림 합병을 적극 지지해온 의회의 비준 절차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의 자국 내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비준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는 푸틴이 ‘새로운 냉전’을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소련 해체 후 4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국제질서에 직접적으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에 비견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1989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냉전 종결을 선언한 지 4반세기 만에 ‘신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크림반도에서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자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 등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서 자국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09년 ‘신냉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코노미스트 기자 에드워드 루카스는 “조지아 사태 때 드러난 푸틴의 야심은 곧 다른 구 소련 연방 국가로까지 퍼질 것이고, 이때 러시아와 서방의 정면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조지아는 2008년 8월 친러 성향이 강한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무력 진압에 나섰다.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조지아를 침공해 5일 만에 점령했다.

프랑스의 중재로 러시아와 조지아 간에 휴전 협정이 체결됐고, 남오세티야는 조지아로부터 완전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조지아를 주권국가로 승인하고 독립과 안보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NYT는 특히, 러시아가 자국과 주변국을 포함한 ‘안보영역’을 침범당할 경우 그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연설에서 “서방과 대립할 생각은 없지만 러시아의 국익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푸틴의 향후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푸틴은 최근 일련의 조치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러시아계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기를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BBC 뉴스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체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크림 합병으로 이번 위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푸틴이 크림반도에 무혈입성해 러시아-크림공화국간 합병 조약에 서명할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도 이제는,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보다 강한 카드를 꺼내들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 서방 언론들은 2차 제재에 대해 '짖기만 할 뿐 물지 않는다'는 표현을 써가며 미국과 유럽연합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푸틴을 크림반도에서 물러나게 할 만한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푸틴은 오히려 “스프링을 너무 세게 누르면 반동이 생긴다”며 서방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중단이라는, 유럽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유럽은 천연가스의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 협회인 외교국방정책위원회의 표도르 루캬노프 회장은 서방의 제재가 푸틴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만약 그들이 (경제적) 전쟁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게 현재 러시아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미국·유럽연합과 타협을 기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쪽으로 돌아서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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