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는 美의 명백한 '정보 실책'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러시아의 정확한 움직임과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명백한 정보 실책을 범했으며, 이를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정보 역량 강화에 뒤늦게 나섰다고 월스트리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이 보도했다.

WSJ는 정보·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러시아군이 지난달부터 크림 반도 주위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등 여러 경고가 있었지만, 미국은 확증을 잡지 못하고 결국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를 허용하는 우를 범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여러 달 전부터 미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가지고 장난을 칠 것이라는 경고를 백악관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관심은 러시아 영토 내 러시아군의 동향에 집중됐다.


그러나 정작 크림 반도를 점령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한 것은 러시아 영토 내 에 포진한 대규모 러시아군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크림반도에 침투시킨 소수 정예 병력이었다. 미 정보기관들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미 정보기관들의 평가를 자세히 분석해온 마이클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공화당)은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들이 보리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를 오판했는지에 대한 재검토에 나섰다.

일부 정보·군사 전문가들은 푸틴의 기도를 명확히 이해했더라도 미국의 대응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보기관장들은 사태 발생 3일 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크림 반도 장악 속도가 워낙 빨라 미국이 이에 대응하는 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정보 실책은 러시아에 대한 관심 저하와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미국의 첩보 위성과 다른 정보 수집 자산들은 러시아보다는 대테러와 중동, 북한 등 동북아시아 쪽에 집중시켜왔다.

지난해 12월 초만 해도 미국 정보 분석가들과 외교관들은 푸틴이 크림 반도에 관심이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렸다. 더구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반정부 시위 확산은 러시아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에 따라 분석가들과 외교관들은 사태가 악화하면 러시아가 흑해함대 모항 등 크림 반도의 자국 이익을 보호하려고 모종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을 담당하는 미국의 유럽사령부도 국방부에 첩보위성 집중 배치 등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에 대한 정보 수집 노력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위성이 보낸 사진을 놓고 미 관계자들은 크림 반도 주둔 러시아군의 통상적인 움직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다.

지난달 초 우크라이나 주재 미 대사관 측은 크림 반도에 직원들을 파견해 현지 정보 파악에 나섰지만, 이들이 보내온 정보는 간헐적이었다. 반전의 계기는 지난달 18일 유혈 사태가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마련됐다. 우크라이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러시아의 군사적 대응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미국의 의구심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하기 4일 전인 지난달 25일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 주재 미 대사관 무관을 초청해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부근에서의 대규모 군사훈련 계획을 설명했다. 미 군사·정보 관계자들은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 침공 전에 사용한 똑같은 술책으로 이 훈련을 위장할 것으로 판단했다.

유럽사령부도 다시 이 지역에 대한 첩보위성 집중 배치를 요청했다.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 등 정보기관장들은 지난달 26일 러시아가 크림 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경고를 뒷받침할 확증이 없었다. 결국 경고에도 불구, 미국은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을 하지 못했다.

이런 오판이 미국의 감시 위성과 도청 체계를 꿰뚫는 러시아의 의도적인 회피인지 아니면 푸틴이 막판에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제때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크림 반도 주둔 러시아군도 의도적으로 무전과 휴대폰 사용을 자제했다.

미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장악하는데 동원할 병력이 훈련에 참가한 대규모 병력일 것으로 확신했지만, 정작 28일 장악 작전의 선봉은 러시아가 사전에 침투시킨 소수의 정예 병력이었다.

이런 실책을 교훈삼아 미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발틱공화국 등에 대한 첩보 위성 감시와 통신 감청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특히 러시아군의 사전 움직임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 개선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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