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은퇴식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전호의 작전타임]③ 박찬호의 '그 시작과 끝'

[글 싣는 순서]

① 박찬호와 'CBS'
② 박찬호의 운명적 만남, '한양대'
③ 박찬호의 '그 시작과 끝'

2012년 11월 30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는 박찬호. 윤창원기자
◈ CBS와의 또다른 인연

"이유 없이 허리가 아프고, 공이 날아가면서 구질이 변하나? 박찬호 선수의 부진엔 야구계에선 다 알고 있는 이유가 있다. 딴 짓하지 말고 야구만 열심히 하면 부활할 수 있다."

2004년 11월 10일. 삼성 라이온즈 사장에 임명된 김응룡 감독(현 한화이글스 감독)이 CBS 라디오프로인 '김어준의 저공비행'에 출연해 박찬호에게 충고한 말이다.

제 1회 대청기 중계를 통해 박찬호를 전국적으로 알린 CBS는, 그로부터 13년 뒤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박찬호와 이와 같이 다시 연결된다. 이번엔 성격이 다르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김응룡 사장의 발언 내용이 각 포털사이트에 뜨자 박찬호는 곧바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찬호는 홈페이지를 통해 "그분의 말씀이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절 위함이 될거에요. 아님 언론의 장난일수도 있고요. 결국은 모든 것들이 저 잘 되라고 하는 말씀 아닐런지…"라는 글을 올렸다.

박찬호는 또한 "만일 모두가 너를 비난 할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 할 수 있다면…"으로 시작되는 루디야드 키플링의 시를 인용했다.

박찬호의 국내 매니지먼트사 '팀61'측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도대체 박찬호의 허리통증에 대해 야구계에서 다 알고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박찬호를 만난 적도 없는 분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김응룡 감독의 발언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 냈다.

2011년 12월 한화 입단식에서 한대화 감독과 함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송은석기자
◈ 김응룡 감독과 박찬호

김응룡 감독의 성격이 직선적이고 화법이 직설적이긴 하지만, 김 감독은 후배를 아끼고 선배를 공경하기로 유명하다.

고교 경기가 열리는 동대문구장을 찾아 손자같은 후배들에게 회식비를 전한다. 이따금 동대문구장 인근으로 원로야구인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용돈도 전한다. 보기와 다르게 정이 많다.

이 방송이 나갈 당시 박찬호는 국내에 체류 중이었다.

박찬호의 글대로 '말씀이 지나쳤고', 매니지먼트사의 말대로 '만난 적도 없다'면, 논란 당시 홈페이지를 통한 반응 보다 '한국야구의 상징이자 대선배'인 김 감독을 직접 찾아 인사드리고 야구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결국, 김응룡 감독과 박찬호는 이로부터 9년 뒤, 같은 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맞닥뜨리게된다.

2012년 국내복귀를 선언한 박찬호는, 계약금 6억원과 연봉 2,400만원까지 모두 유소년과 아마 야구를 위해 기부하면서 한화이글스에 입단한다.

박찬호는 그 해 5승 9패, 방어율 5.07를 기록한다.

성적이 기대에는 못미쳤지만 115.1 이닝을 소화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박찬호는 2006년 이후 한시즌 100 이닝 이상을 던져본 적이 없다.

◈ 허전하고 쓸쓸한 퇴진

2012년 정규시즌이 끝난 뒤인 10월 한화는 새 사령탑으로 김응룡 감독을 영입한다.

박찬호는 정규시즌을 마치고 은퇴 여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특정 선수에 대한 지나친 '특별대우'에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특히 신생팀 NC 다이노스에 보내지않을 20인 보호 명단에 박찬호가 포함되자 김응룡 감독은 한 선수를 위해 팀이 끌려 다닐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수 본인의 의지를 중요시하는 김 감독은, 은퇴 여부를 본인 의사에 맡겼고 결국 박찬호는 2012년 11월 30일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은퇴를 발표한다.

'한국 최초 메이저리거'는 화려하면서도 파란만장했던 선수생활은 그것으로 끝난다.

박찬호는 지난해 7월 모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메이저리거 시절, 루 게릭의 은퇴식 장면을 TV로 시청했는데 무척 감동적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은퇴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는 꿈을 안고 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야구를 세계에 알린 '코리안 특급', 그가 그라운드를 영원히 떠나는 길엔 '은퇴 경기'도 '은퇴식'도 없었다.

팬들 역시 그의 마지막 투구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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