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 '안전, 안전' 외치는 朴…정부는 온종일 '우왕좌왕'

박근혜 대통령.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만큼 안전을 강조한 대통령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민 안전'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제시했으며 대통령이 된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안전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공무원들에게도 안전의식을 당부했으며 그 일환으로 행정안전부를 안정행정부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2월 정부조직개편 때 여당 의원들조차 대통령이 워낙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행안부'를 '안행부'로 고칠 수밖에 없다면서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말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발표했으며 차관과 차장급 안전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해 매월 한차례씩 열었다.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가 붕괴됐을 때도 참담하다면서 어찌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관계부처와 관련자들을 질책했다.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부산외대 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거의 두 달 만에 여객선이 침몰하는 대형 참사가 터졌다.

세월호 탑승자 475명 가운에 구조자가 179명이고, 사망자와 실종자는 296명에 이른다.

지난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전북 부안군 위도 부근에서 침몰한 서해훼리호 참사 때의 사망·실종자 292명보다 많은 숫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 대통령'으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랐으나 정부의 대응은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해난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이런 식으로 대처하라는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선이 조난될 경우 승객들은 어떻게 대처하라는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어야 하며 실제로 탑승객 전원에게 탑승 시작과 동시에 교육을 시켰어야 했지만 그 어떤 탑승객도 조난 매뉴얼 교육을 받은 바 없다고 말한다.

구명정과 탑승구의 위치를 승객에게 알려주지도 않았으며 배가 가라앉으면 자동적으로 내려가 바다에 뜨게 돼 있는 구명정도 없었다.

선장 이모 씨를 포함해 승무원 30명이 비상사태 시에 대비한 안전 매뉴얼 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이다.

항공사들의 안전 매뉴얼을 조금이라도 참고했다면 대형 참사는 면했을지 모른다.

안전을 '금과옥조'처럼 외쳐대던 정부의 안전의식이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생존자와 구조자 발표 과정에서 번복과 수정을 온종일 계속했다.

16일 오후 1시까지만 해도 구조인원이 368명이라고 했다가 오후 4시 30분 브리핑에서는 구조 인원이 164명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민간 어선에서 구조한 인원이 중복 계산돼 204명이 늘어났다는 설명이었으나 오락가락 발표에 따른 정부 불신을 자초했다.


경찰과 해군, 안전행정부의 초동 대응도 부실 그 자체였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상에서 군.경 합동 구조팀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침몰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해 초기엔 헬기와 구조 장비 동원도 미미한 수준이었고 잠수인력도 20여 명에 그쳤다.

정부는 사고 해역이 섬으로 둘러싸인 진도 조도면 앞바다로 연근해인지라 곧바로 구조가 이뤄질 것으로 오판을 한 나머지 헬기와 구조 인력을 여객선 침몰 현장에 대거 파견하지 않았다.

구조자들은 "처음엔 헬기가 많지 않았으며 민간 어선만 보였다"고 말했다.

침몰 사고가 심각하지 않는다는 당국의 판단은 2시간 20분이나 물위에 떠 있던 세월호를 물속으로 가라앉혀버린 꼴이었다.

세월호 안에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다.

신고가 접수된 시간이 16일 오전 8시 58분이었고 첫 구조작업이 시작된 시간이 42분이 지난 9시 40분이었다.

목포 해경과 전남 영암군 삼호면 해군기지에서 사고 해역까지는 직선거리로 2,30km가량밖에 되지 않아 헬기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영암 해역사 기지에서 과연 몇 대의 헬기를 급파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침몰 사고를 접수하자마자 해경과 해군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와 진도군, 목포시, 해남군 등에 긴급 지시해 모든 구조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야 했다.

자발적으로 구조작업에 나선 어부들은 "고깃배와 낚싯배들이 대거 출동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도중에 헬기들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구조연합회 이만식 운영국장은 "초기 상황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조 성공률이 결정 된다"면서 "초기 대응을 잘했다면 실종 학생들을 많이 구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헬기 구조는 소수에 그쳐 대형 재난 사태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해군과 해경이 보유한 구명정과 구명보트는 침몰 선박에 바짝 정박할 수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

해경과 해군 등 당국은 침몰 신고를 접수하자마자 헬기를 동원해 세월호 침몰 현장에 구명정과 구명보트를 떨어뜨렸다면 더 많은 구조를 했을 것이다.

해경과 해군이 초동 대응을 신속히 했다면 "선실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고 구조대를 기다리던 학생들을 갑판이나 밖으로 나오게 했을 수도 있었다.

제주해상관제센터가 세월호로부터 조난신고와 구조요청을 받은 5분 뒤인 오전 9시 승객들의 탈출을 준비시키라고 지시한 것을 해경과 해군이 실행했다면 구조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실제로 '세월호'의 안내방송에 따르지 않고 자발적으로 밖으로 나온 승객들은 대부분 구조됐다.

선장과 기관장 등 세월호 승무원들의 잘못으로만 책임을 돌리기엔 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아쉬운 대목이다. 사망·실종 300명 가까운 참사는 면했을지 모른다.

따라서 정부의 초기 상황 오판으로 말미암아 재난대응시스템이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눈 뜨고 250명 가까운 아이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비판과 비난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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