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세월호 침몰 엿새째인 21일.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체육관은 오히려 차분하고 고요했다. 오후들어 뚝 끊긴 수색 소식만큼이나 이곳에도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가족들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속절없이 단상 위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습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현장 생중계 뉴스나 화면이 띄워졌지만 기다리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사망자 숫자만 하나둘 늘어날 뿐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청와대로 향한다며 성난 행진을 하던 가족들은 이제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할 기운도 없는 듯 보였다.
일부 가족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도시락으로 요기를 했다. 잠시라도 현실을 잊으려는 듯 한쪽 구석에서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서러운 흐느낌이 고요한 적막을 깼다.
한 명이 울음을 터트리면 주변 가족들도 금새 눈시울을 붉혔다. "내 딸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며 발을 구르며 통곡하는 어머니에게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점심시간 이후. 물결이 잔잔해지고, 가이드레일이 연결돼 선체 3층과 4층에 본격적인 수색 작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대표를 통해서 전해듣고 나서야 가족들은 악몽에서 깬 듯 눈빛이 반짝였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은 오후부터 직접 배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내 새끼들, 내 가족들 가까이 가기로 한 것이다.
"오후 4시부터 경비정을 예약해 현장 근처에 갈 수 있다"는 실종자 대표의 말을 듣자마자 가족들이 신청을 하기 위해 우루루 단상 근처로 뛰어갔다. 신청자들이 몰려들면서 승선 정원을 최대한 늘리기로 했다. 가족들은 순번표를 받아가며 순서를 기다렸다.
그 누구의 말도 믿기 힘든 상황에서 가족들 사이에서도 험한 말이 오가거나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진정하자"며 다독이는 목소리가 더 컸다.
침몰 엿새째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한계에 달하고 있는 가족들은 이제 어렵게 부여잡고 있는 희망의 끈을 놓고 점점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현실은 차갑게 돌아오는 시신이고, 그마저도 빠를수록 다행일지 모른다며 가족들은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