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단독] 鄭 총리, 1천만원 '쾌척'…"동네 분열됐어요"

"기름피해, 방제·수색동원 어민 위로하러 온 거 맞나?"

정홍원 국무총리. (사진=황진환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에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힌 정홍원 국무총리가 기름유출 피해를 입고 유실물 수색작업에 나선 진도 인근 섬 주민들을 방문해 격려했지만 마을 이장 등 대표자들만 잠시 만나고 떠나 '요식행위' 아니냐는 강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 총리가 어민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위로금 형식으로 내놓은 1,000만원을 놓고도 섬 주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 "위로하러 왔으면 어민들 얘기를 들어줘야지요"

정부 세종청사와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차려진 진도군청을 오가며 사고 수습에 나선 정홍원 국무총리는 풍랑주의보가 해제된 12일 오후 사고해역 바지선을 방문해 잠수사들을 격려했다.

이어 사고해역에서 가까운 서거차도 복지회관을 찾아 수색작업 지원에 나선 인근 섬 주민들과 기름유출 피해를 입은 양식어민들에게도 위로와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정 총리는 이장 등 인근 섬 마을 대표자들만 잠깐 만났을 뿐 대다수 피해 어민들은 접근을 통제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종자 수색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세월호 기름유출로 양식장 피해를 입고도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어민들은 정 총리 방문 소식에 반가워했지만 정작 정 총리는 마을 대표자 몇명만 30분간 만난 뒤 떠났다는 것.

인근 섬 주민 A 씨는 "피해상황을 살피고 위로해주러 왔다면 어민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마을마다 이장 한명씩만 불러놓고 대부분 어민들을 통제시키고 무슨 얘기를 한 지도 모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 씨는 "박근혜 대통령도 배타고 사고해역 왔다고 들었는데 총리는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관광하듯 기름피해 상황을 휙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와 30분만 있다가 떠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총리 위로 자리에 참석한 인근 섬 이장 B 씨도 "총리님이 (어민들은 아니고) 대표자들만 만났다"다고 확인했다.

'몇명이 참석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장 B 씨는 "조도 면장님이나 수산계장한테 물어보라"고 즉답을 피했다.

사고현장에서 2마일(3.2km) 떨어진 동거차도 동막항 미역양식장에서 미역을 말리고 있다. 현재 기름띠가 동거차도 인근 미역양식장으로 밀려들면서 어민들로부터 양식장 피해 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윤성호 기자)
앞서 정홍원 총리는 이날 오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박주영 전남지사 등과 협의를 통해 구조·수색 작업에 참여한 어선들의 기름값과 인건비, 그리고 기름 유출로 피해를 입은 양식장 보상비 등을 선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섬 주민들이 기름유출 피해보상을 스스로 입증하라는 보상지침에 반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내려진 조치다.(CBS노컷뉴스 9일자 '[단독] 대참사 앞에 기름피해 어민들은 셀프 입증?')

이에 사고해역 인근 섬 주민들은 정부 결정을 일단 반겼지만 정작 이날 오후 섬을 찾은 정 총리가 이장 등 대표자들만 잠시 만나고 떠나면서 어민들은 진정성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국무총리 비서실은 이날 저녁 8시30분쯤 "정홍원 총리가 바지선 잠수사들과 진도해역 어민들을 방문해 격려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

이날 어민 격려 자리에는 조도면장과 수산계장, 섬 마을 이장 등 달랑 7명만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 "떡값인지 술값인지 동네 분열됐어요"

정 총리가 주민 위로금 명목으로 주고 간 돈 1,000만원도 문제가 됐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정 총리 일행은 서거차도 복지관을 나서기에 앞서 섬 대표들에게 1,000만원을 내놨다.

기름피해 보상이나 수색작업 동원 유류비와 관련 없는 순수한 위로금 성격이었지만 섬 주민 일부는 "우리를 뭐로 보냐"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A 씨는 "동네별로 나눠가지라고 돈만 툭 던져놓고 간 건데 결국 돈 분배를 놓고 마을에서 트러블(문제)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A 씨는 "국가에서 준 건지 개인적으로 준 건지 1,000만원을 주고간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며 "총리가 헬기타고 와서 이장들 몇명 만나고 이러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른 섬 이장 B 씨 역시 "총리가 섬 주민들 그동안 고생했다고 1,000만원을 주고 갔다"며 "(그 돈이) 어떻게 분배되는 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생계에 바쁜 어민들을 일일이 모실 수 없어 조도 면장하고 상의를 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진화에 나섰다.

총리실 관계자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생계에 바쁜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조도 면장에게 '섬을 대표할 만한 분들 중에 시간이 가능하시는 분들만 참석해주시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피해보상, 유류비 지원과 관련해 동거차도와 관매도, 대마도 등 인근 섬의 많은 주민들이 총리를 만나기 원했다는 여론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면장이나 군수를 통해 그런 요청이 올라왔으면 협의가 됐을텐데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피해어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거차도를 방문할 때 사용한 해양경찰청 소속 헬기.
대표자들에게 전달된 1,000만원은 국회 예산심의를 받은 총리실 특정업무 경비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달 27일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는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총리 자리를 지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이후 서울과 세종 정부청사, 진도항을 오가며 사고 수습에 나섰지만 잇딴 말실수와 돌발행동으로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앞서 지난 1일에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정 총리는 "시신 훼손이 심해지니 진도항에서 아이들 시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수색을 독려해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에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라고 답했다가 호된 질책을 들었다.

사고발생 초기인 지난달 20일 새벽에는 수색 지연에 불만을 품고 청와대로 향하려는 실종자 가족들을 설득하려다 오히려 성난 민심에 2시간 가량 차 안에 갇히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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