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기만 하면 어쩌나"…속 끓이는 공무원들

관피아 근본 원인인 '용퇴 관행'도 수술해야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안전행정부의 핵심기능인 안전과 인사·조직 기능을 안행부에서 분리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이 대목을 읽어내려가자, 모 중앙부처의 고위 간부 A 씨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언제고 잘못하면 조직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로 들렸다"고 말했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이제 퇴직 후 갈 길도 죄다 막혔다. 박 대통령은 "안전감독 업무, 인허가 규제 업무,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예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대책에 공직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잘못하면 조직 자체가 사라지고, 퇴직 이후에는 갈 곳도 없다'는 위기감이 일고 있는 것이다.

◈ 관피아 해체도 좋지만…"뭔가 부족하다"

행정고시로 관가에 입문한 뒤 후배들에 떠밀려 정년 전에 용퇴하고, 이후 산하기관에 재취업해 퇴직 후를 보장받는 이른바 '관료 마피아' 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전·현직 관료가 유관 기관 재취업을 매개로 유착되는 '관피아' 구조는 어떻든 해체돼야 한다는데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무조건 출구만 막아놓고 떠미는 대책에는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부처 B 과장은 "공무원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만큼, 처우나 보수를 강화하는 대책도 필요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부처의 C 국장은 "공직에서 쌓은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인 손실"이라며, "재취업 기회를 주되, 대신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를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역설했다.

◈ 무조건 떠밀지 말고, '용퇴' 해소 대책도 내놔야

이처럼 공직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것을 놓고, 방송통신대 윤태범(행정학) 교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고민 없이, 재취업 제한이라는 퇴로만 막아놓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관피아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정년이 보장돼 있지만, 대부분 간부들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 퇴직한다. 인사적체 문제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조직을 떠나는 이른바 '용퇴' 관행이다.

윤 교수는 "관피아라는 것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공직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용퇴 문화에서 비롯됐다"며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 대안 없이 재취업 제한만 하면 결국 졸속으로 끝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 없이 공무원들을 옥죄기만 하는 대책으로는 관료사회의 저항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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