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계엄령 선포 배경과 전망(종합)

태국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잉락 친나왓 전 총리 해임 이후 반정부 진영과 친정부 진영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이 때문에 폭력 사태 발생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7일 잉락 전 총리에 대해 권력 남용을 이유로 해임 결정을 내렸으며, 부총리 겸 상무부 장관이었던 니와툼롱 분송파이산이 과도총리 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는 니와툼롱 과도총리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중립적인 인물로 새 과도총리를 임명해 새 과도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반정부 진영과 가까운 상원,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에 새 총리를 임명하라고 압박해왔으며, 이 기관들이 새 총리를 임명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직접 새 총리를 선정해 국왕의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가운데 상원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 총리 임명을 위한 논의와 움직임을 구체화해왔다. 이 때문에 자칫 2개의 정부가 구성돼 큰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반정부 시위 지도자인 수텝 터억수반 전 부총리는 이미 총리 청사에 시위 본부를 차리는 등 니와툼롱 과도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에 대한 우위를 과시하고 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현 정부를 지지하는 이른바 '레드 셔츠' 진영은 반정부 진영의 새 총리 임명은 정국 위기가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통해 반격을 가하기로 했다.

상원이나 반정부 진영의 새 총리 임명은 현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레드 셔츠들은 그동안 반정부 진영과 충돌해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반정부 진영이 시위해온 방콕 시내로 들어오지 않고 방콕 외곽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그러나 현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새 총리 임명이 구체화하면 방콕 시내로 진격해 반정부 진영과 일전을 불사한다는 계획이었다.

15일에는 반정부 시위대의 점거 시위장에 무장괴한들이 총격과 수류탄 공격을 가해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쳐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됐다.


2월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시위대에 대한 공격이 재개되자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폭력이 계속되면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도 있다"며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비췄다.

계엄령 선포로 친정부 진영과 반정부 진영이 충돌해 폭력사태가 발생할 우려는 크게 줄었다. 양측은 계엄령 선포 직후 이날 벌일 예정이었던 거리 행진 시위를 바로 취소했다.

군의 이번 계엄령 선포는 질서와 치안 유지를 위한 조치로 일단 관측되지만, 반탁신 진영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군의 쿠데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은 과거 정치 혼란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마다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군이 나서 권력구도를 재편한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군은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되고 나서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를 감행했다. 심각한 권력 갈등과 계층 분열을 드러내는 이번 정국 위기에서도 친탁신 진영과 반탁신 진영은 타협이나 대화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반목에 따른 깊은 골을 드러내고 있다.

계엄령 선포가 쿠데타로 이어지면 정치 위기가 또다시 고조되고 친탁신 진영으로부터 큰 반발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군은 일단 시위 격화에 따른 치안 불안을 방지하는 한편 두 진영의 타협을 위한 중재를 시도하다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계 재편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

왕실, 관료, 군부, 중산층 등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반정부 진영은 선거로는 친탁신 진영을 이길 수 없어서 군에 의한 강제적인 권력구도 재편을 내심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반정부 진영은 군의 중재에도 친탁신 진영과 타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군이 계엄령 선포 후 자신들의 역할을 치안 유지에 국한하지 않고 중립적인 인물을 내세워 새 총리를 임명하는 등 정치에 개입하면 이번 계엄령은 사실상 쿠데타의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군부는 전쟁이나 폭동이 발생하면 법에 따라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 사태가 장기간 지속하긴 했어도 현 정국이 전쟁이나 폭동에 따르는 상황이 아니므로 내각과 협의하지 않은 군의 계엄령 선포가 사실상의 쿠데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정치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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