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박 대통령은 왜 '해경 해체' 카드를 꺼냈을까?

세월호 참사 34일만의 공식사과, 담화의 노림수는?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19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를 시청하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공식 사과하고 해경 해체 등 관피아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방안 등을 발표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 만에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한데 이어 민주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가톨릭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등 각계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해경 해체에 대해 여당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있고 대선 경쟁자였던 문재인 의원은 특별성명을 통해 해경해체는 표풀리즘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왜 '해경 해체' 카드를 꺼냈을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민 앞에 서서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왜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거냐?

= 형식적으로는 사과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내용에서는 사과 보다는 정부조직 개편에 방점을 뒀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4일 만에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령 취임이후 청와대 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입장만 밝히던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국민 앞에 서서 사과한 것이다. 눈물도 흘렸고 고개도 숙였다.

그리고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전의 사과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지만 왜 대통령의 책임인지 원인 분석이 없었고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언급이 없었다. 질의응답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만하고 듣고 싶은 말은 피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곧바로 해경 해체와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말로는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자기반성이나 성찰 없이 해경과 안행부, 해수부의 탓임을 강조한 모양새인 것이다.

▶ 그래서 각계의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것이냐?

= 그렇게 보인다.

20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5개항을 요구했는데 첫째,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 것, 둘째,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에 전면적인 인적쇄신 단행, 셋째 언론통제철폐를 약속 할 것, 넷째, 무분별한 친 기업 규제완화 정책 폐기, 다섯째, 대통령은 이번 참사의 수습에까지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런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도 20일 성명서를 내고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해
"국가시스템의 최고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담화로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며 "마치 해경이 모든 문제의 출발이자 몸통인 듯 해경해체론을 전면에 들고 나서는 것은 정권안보를 위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다.

민교협은 ▲대통령의 직접 책임과 퇴진 ▲특별조사기구설치 ▲규제완화와 공공시설 및 서비스에 대한 민영화 정책 추진 중단 등을 촉구했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도 20일 진도 팽목항에서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는데 "대통령 담화문에 대한민국 국민인 실종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직은 실종자 수색과 사고수습이 우선인데 이 부분이 담화에서 빠진 것이다.

대책위는 또 특별법제정 등 진상규명 때 피해자 가족 필수적 참여, 대통령을 포함한 성역 없는 조사, 청와대 보고·지시 등 모든 정보의 투명한 공개, 독립된 진상조사기구 설치, 피해자 가족과 지역사회 지원 대책, 감사원 조사·국정조사·특별검사에서 수집되는 모든 정보 접근 등 6개항을 정부에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양경찰청 해체 선언을 한 19일 오전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해양경찰청에 걸린 해경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해경해체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 그렇다.

해경 해체라는 폭탄선언은 두 가지 점에서 충격적이다.

첫 번째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해경을 해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고 두 번째는 거대한 해경이라는 국가조직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해경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지난 14일부터 감사에 착수해 감사가 진행 중인데 진단이 나오기도 전에 조직해체를 먼저 발표한 것이다. 의사의 진단이 나와야 처방이 이뤄지는데 진단이 나오기도 전에 처방부터 먼저 한 것이다.

그래서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친박계 핵심인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20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중국 불법어선 단속이나 독도 경비의 경우 해경이 담당하는데 그런 기능들이 (국가안전처로 이관된다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어제 특별성명을 내고 "(해경 해체는) 포퓰리즘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일시적 미봉일 뿐"이라면서 "대통령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놀라운 점은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언이 나온 다음날 정부가 관계차관회의를 열어서 곧바로 후속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점이다.

정부는 20일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차관회의를 열어 대통령이 담화에서 밝힌 해경 해체와 정부조직 개편 등의 안건을 6월 초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양경찰청 해체 선언을 한 19일 오전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해양경찰청에서 직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길어도 보름 안에 정부조직개편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인데 해경 해체 같은 정부조직개편이 무슨 군사작전도 아니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의 잔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날 차관회의에서 다음 달 초까지 정부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는 건 전형적인 성장시대 군사작전과 같은 것"이라고 펑가했다.

서두르고 대충 적당히 눈감아 주는 관행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왔는데 사고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기도 전에 대책부터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급증이나 성급함이 고도성장의 동력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세월호 참사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이후 국민들의 공감대는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이제는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자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점을 간과했거나 아니면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박근혜 대통령이 왜 해경 해체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를 자세히 보면 그 본질이 드러난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해경이 잘못했으니까 조직해체라는 극약처방을 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 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라고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 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해온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어왔기 때문"이라며 원인 분석까지 내렸다.

박 대통령은 그래서 "앞으로 (해경의)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겨서 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사후수습책까지 제시한 것이다.

선의로만 해석하자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조직을 해체하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조직개편의 담화 내용을 자세히 따져보면 결국은 중앙집권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행정부도 핵심 기능인 안전과 인사·조직 기능을 안행부에서 분리해 안전 업무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통합하고, 인사·조직 기능도 신설되는 총리 소속의 행정혁신처로 이관할 것"이라며 "안행부는 행정자치 업무에만 전념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행부는 핵심 기능인 인사와 조직, 안전 업무에서 손을 떼게 해 사실상의 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해양수산부의 경우에도 ▶해양교통관제센터(VTS)는 국가안전처로 통합하고 ▶해수부는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 및 진흥에만 전념토록 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박 대통령의 구상대로라면 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라는 두 거대 정부조직이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데 '만기친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박 대통령이 그립을 더 강하게 쥐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해체 카드를 비롯한 정부조직개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세월호 참사에 따른 여론을 정부조직 개편과 개각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조직개편과 개각논의가 활발해지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세월호 국면을 전화하는 동시에 오히려 이를 기회로 중앙집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말로만 관피아 척결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부요로에 낙하산을 투하하는 일부터 중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캠프와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를 지낸 뉴라이트 출신인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를 방통심의위원장으로 내정했다.

한편으로는 관피아 척결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측근들을 낙하산으로 투하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에 진정성이 있는 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선캠프 출신이자 뉴라이트 출신인 박효종 전 교수를 임명하겠다는 건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