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고충? 감독·선수·팬들 아무도 몰라요"

[임종률의 스포츠레터]'배구 포청천' 김건태 심판, 야구계에 전해온 메시지

'우리도 힘들어요' 프로야구는 한 경기에도 몇 번씩 감독, 선수들과 심판들이 판정과 관련해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사진은 올 시즌 석연찮은 판정이 적잖았던 KIA 선동열 감독이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자료사진=KIA)
어제(22일) 한화-넥센 경기가 있는 목동 야구장으로 향하는 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다름아닌 배구 포청천으로 이름을 날린 김건태 전 심판위원(58)이었습니다.

'배구 시즌도 끝났는데 무슨 일일까?' 의아한 생각이 드는 가운데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는 지난해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마련한 은퇴식에서 프로배구 9시즌을 마무리하고 아시아연맹 심판 감독관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우연찮게 기사에 내 이름이 나온 것을 보고 전화를 했다"고 운을 뗐습니다. 다름아닌 그제 제가 쓴 'KBO, 당장 '비디오 판독 확대' 못 하는 속사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김 위원이 예전 했던 발언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최근 빈발하는 오심과 비디오 판독 확대와 관련한 기사였는데 말미에 인간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 김 위원의 발언을 넣었습니다. "공이 손끝을 스치는 찰나의 장면은 사실상 판정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국제배구연맹의 심판 평가 항목에는 터치아웃은 없다"는 내용입니다.

김 위원은 차제에 최근 야구계의 최대 화두인 심판 판정과 관련해서 꼭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심판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비디오 판독과 관련한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잇딴 오심? 심판들 불안해서 나온다"

김 위원은 세계 배구계에서 손꼽히는 명심판입니다. 30년 넘게 숱한 국내외 주요 경기를 맡았던 그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상(referee award)까지 받았습니다. 지난해까지 국내 현역 중 유일하게 국제 심판 자격증이 있었고, 2010년 FIVB 심판을 은퇴하면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힘이 드네요' 20일 한화 선수들이 목동 넥센과 홈 경기에서 판정에 항의하자 이영재 주심이 설명하는 모습.(자료사진=한화)
일단 김 위원은 최근 프로야구 오심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심판들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짚었습니다. 중계 화면의 발달과 빗발치는 비난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은 "심판들이 또 다시 오심을 할까 봐 두려운 것"이라면서 "그래서 소신 판정을 못 하고 자신감 상실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심판인 만큼 누구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심판의 마음은 감독, 선수, 팬들 아무도 모른다"면서 "오직 같은 심판이기에 그 고충을 알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잘 하면 본전이고, 못 하면 득달같이 비난이 온다"면서 "심판은 고독과 고난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관계자들과 팬들에 대한 양해의 당부도 했습니다. 김 위원은 "오심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전제한 뒤 "그 중 규칙 오적용과 감정적 판단은 용서받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인간 한계를 넘는 찰나의 순간에 대한 판정은 어쩔 수가 없다"면서 "이해를 해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오심을 보고만 있자는 건 아닙니다. 김 위원은 "아무리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하지만 최소가 돼야 한다"면서 "횟수가 많으면 무능한 심판이고 발굴 때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그 횟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심판들이 불안해하지 않게 판정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프로배구처럼 야구도 비디오 판독 가능"

그런 면에서 김 위원은 비디오 판독 확대에 적극 찬성입니다. 오심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겁니다.

KOVO에 비디오 판독 도입의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 다름아닌 김 위원입니다. 2006-07시즌 비디오 판독을 입안해 다음 시즌부터 도입이 됐습니다. 사실 김 위원도 처음에는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발달하는 중계 기술과 높아지는 팬들의 요구 등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특히 심판들의 권위를 깎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상을 높여줄 수 있다는 겁니다.

김 위원은 "전 경기가 중계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자존심은 조금 상해도 그게 더 정확한 길이라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인, 아웃을 판단하려 해도 육안으로는 공이 바닥에 닿는 찰나가 아니라 튀어나오는 장면만 보인다"고 다시금 인간의 한계를 언급했습니다.

야구계 역시 지금부터라도 당장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김 위원은 "메이저리그처럼 300억 원을 들일 필요가 없다"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중계 화면의 힘을 빌리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차피 오심 논란도 중계 화면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결자해지로 다가서면 된다는 겁니다.

'심판은 고독한 길' 최근 프로야구 최대 화두인 오심에 대해 아낌없는 제언을 한 배구 명심판 김건태 아시아연맹 심판 감독관.(자료사진=KOVO)
KOVO는 현재 비디오 판독을 100% 중계 화면에 의지해 시행 중입니다. 중계 방송사와 협의를 통해 공식적으로는 비용도 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광고 등의 지원으로 방송사에 합당한 보상도 있다는 관계자들의 귀띔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방송사도 중계를 위해 마련한 화면을 사용하는 것인 만큼 큰 비용은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열변을 토하던 김 위원은 심판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에 대한 첨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김 위원은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등 다른 경기도 현장에서 본다"면서 "그러나 심판에 대해서는 채찍질만 하지 칭찬은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어 "심판에 대한 투자를 해줘야 좋은 판관이 클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P.S-김 위원은 현재 아시아연맹이 주관하는 각종 국제대회에 심판을 배정하고 평가하는 감독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은 "후배들이 현역으로 뛰는 것을 보면 지금도 나가서 휘슬을 불고 싶다"고 합니다. 30년 넘게 수천 경기를 치렀음에도 심판 본능은 여전한 겁니다. 이처럼 판관을 천직으로 아는 심판들이 지금도 묵묵히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잠시 이들의 땀과 노력을, 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잠시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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