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다 바꾼다' 삼성 마하경영에 無노조 방침도 바뀌나?

지배구조상 승계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서도 모범 보여야



"이건희 회장이 2014년에 마하 경영 한다고 신년사 발표했는데 기본적인 모든 것을 바꾸자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유독 노조에 대해서는 입장변화가 더딘지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박원우 삼성 노동조합 위원장)

이건희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마하경영' 방침을 내세웠다. 마하경영이란 항공기가 음속보다 빨리 비행하기 위해서는 기본 설계뿐 아니라 모든 부품을 바꿔야 한다는 것.

이처럼 삼성의 재 비상을 위해선 그동안의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바꾸자고 선언한 '마하경영'에 '무노조 경영' 방침도 포함되는 것일까?

(자료사진)
◈無노조 삼성에서 노조위원장으로 지내온 시간…"그러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백혈병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주장해 온 삼성이 최근 백혈병 사태 해결을 위해 공식사과하고 보상 논의에 나서는 등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삼성이 백혈병 문제에 태도를 바꾸면서 삼성 창립이래 지속해온 무노조 경영의 변화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삼성에서 삼성노조를 이끌고 온 박원우 삼성 노동조합 위원장(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장)은 "삼성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을 협상 테이블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등 기존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를 대하는 삼성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을 나타냈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 저희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백혈병 해결과는 별개로 현장에서 체감할 때 아직 전향적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단 시작해보자"…노조 결성, 그로부터 3년

에버랜드에서 조리사로 일하던 박 씨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2011년 7월 4명의 구성원으로 삼성 노조를 설립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노조를 설립했지만 회사와 협상테이블에 한 번도 앉아보지 못했다. 노조 설립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사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부위원장은 노조 설립 직후 개인정보유출 등을 이유로 해고까지 당했다.

그렇게 만 3년이 지나갔다. 그 사이 법원에서는 부위원장에 대한 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이 났고 위원장의 유인물 배포행위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노조에 대한 동료들의 시선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아직 공식 노조원은 5명이에요. 활동하면서 노조원 수가 많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까봐 아직은 많이 꺼려하죠. 그래도 예전에는 저희 얼굴 보는 것조차 불편해 했는데 지금은 불합리한 부분 있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많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박 위원장은 당초 노조 설립할 때 "정년퇴직 할 때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며 "그 때까지 안 될 수도 있지만 시작조차 못한다면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조급해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삼성 본관 전경. (자료사진)
◈삼성에 바라는 것…"더 나은 삼성이 되길"

최근엔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와 삼성 SDI, 삼성 코닝 등 삼성의 각 계열사에서도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약하나마 물꼬를 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도 힘들게 노조활동 하지만 다른 계열사에서도 희망 놓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박 씨가 삼성에 바라는 건 '더 나은 삼성'을 위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활동 보장해주고 노조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해주면 노동자들로부터 사랑받지 않을까? 이를 통해 더 나은 삼성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최근 삼성 SDS 상장 계획 발표를 두고 삼성이 후계구도 재편을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많다.

불과 며칠 뒤 이건희 회장의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졌고 사흘 뒤인 14일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백혈병 문제에 사과하고 반올림 측이 제안한 내용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백혈병 문제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악화와는 무관하다고 했지만 무려 7년을 끌어온 백혈병 소송 문제를 이 시점에서 해결하려한다는 것은 후계 승계에 있어서 작용할 사회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올라서는 등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낸 것과 달리 순환출자를 이용한 지배문제, 금산분리 논란, 중소기업 하도급 문제, 일감 몰아주기, 백혈병, 무노조 경영 등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는 의문섞인 시각이 적지 않다.

삼성이 이번에 백혈병 보상에 나서는 등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삼성내에서 변화가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삼성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임을,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은둔의 제왕'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줘야 할 과제가 남았다"다며 삼성 그룹이 사회적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경제민주화와 연결돼 있다. 경영실적에서 뿐 아니라 사랑받는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삼성 경영진의 전향적 입장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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