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툭하면 '묻지마 총질'…총기보유 심리만 자극

미국에서 하루가 멀다고 대형 총격사건이 잇따르면서 주민이 체감하는 '공포지수'가 크게 오르고 있다.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총을 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심리가 퍼지는 분위기다.

총기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은 범행 이유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지난 주말만 해도 서부와 동부에서 총기를 동원한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 벌어져 미국 사회에 또 한 번 충격에 빠트렸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과 폭스뉴스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께 동남부의 유명 해변 휴양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해안 도로와 호텔에서 연쇄 총격으로 여성 1명을 포함한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야밤 길거리에서 벌어진 관광객 간의 사소한 시비가 참극으로 이어졌다는 게 목격자들의 전언이다.

"거리에서 꺼져"라는 말에 화가 난 용의자가 피해자들이 묵는 호텔로 쫓아가 총을 난사하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지난 11일에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주택가 도로에서 남성들이 달리는 차에서 다른 차량에 총기를 난사해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거리에서 일어난 사소한 시비가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나 볼 법한 도로의 총격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머틀비치 총격 하루 전인 서부 캘리포니아주 해안 도시에서는 남자 대학생 엘리엇 로저가 여성들이 무시한다는 이유로 칼과 총으로 6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학살극을 벌였다.

로저는 특히 범행을 예고하는 영상을 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린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로저는 문제의 영상에서 "여자들은 다른 남자들에게 주는 애정과 섹스를 내겐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22살인데도 숫총각이고 여자와 키스해 본 적도 없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달 말 국제화물운송업체인 페덱스 배송센터에서 벌어진 10대 남자 직원의 총기 난사극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열등감과 영웅심리에서 비롯됐다.

범인인 게디 크레이머(19)가 범행 전 남긴 노트에는 "내게는 따뜻한 밥에 편한 잠자리가 있어 불만을 표출해서는 안되지만 좌절감과 성적 고립이 있다"며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악명을 남기고 죽는 게 낫다. 남들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적혀 있었다.

여러 총기 범죄의 동기 중에는 특정 인종과 종교에 대한 증오도 자리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캔자스주의 유대인 공동체 시설에서 총기 난사로 3명을 숨지게 한 70대 백인 남성 글랜 크로스는 악명 높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쿠클럭스클랜)의 전직 지도자로 밝혀졌다.

크로스는 경찰에 연행되면서 '히틀러 만세'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범행 동기임을 분명히 밝히는 행동이었지만, 경찰 조사 결과 희생자들은 유대계 이민자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남긴 정신적 후유증도 미국의 길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달 3일에는 텍사스주의 군기지인 포드 후드에서 이반 로페스 상병의 총기난동으로 용의자를 포함한 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했다.

로페스는 2011년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각종 이유로 미국 거리 곳곳이 피로 물들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근 빈발하는 묻지마 살인극이 총기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총기보유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12월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애덤 랜자의 총기난동으로 26명이 숨진 참사를 계기로 총기규제 완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나섰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오바마 정권의 총기규제책은 이에 반대하는 공화당과 보수세력의 반발로 정치 이슈로 변질됐다.

전미총기협회(NRA)는 이 틈을 타고 '총기범죄는 총기 무장으로 막아야 한다'는 선전전을 강화했고, 그 여파로 각 주에서 총기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속속 제정되고 있다.

지난달 조지아주는 교회, 학교, 공항, 관공서에서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총기안전소지 보호법'을 처리했다.

조지아공대 등 각급 공립학교와 애틀랜타 대형교회에서 강력 범죄가 잇따르는 데 따른 피해자 측의 요구와 총기범죄 예방이 구실로 작용했다.

머지않아 제2, 제3의 샌디훅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럴수록 '강대강' 논리에 더욱 힘이 실리면서 강력한 총기규제 완화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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