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검사 안대희, 국민 눈높이 못 읽어 낙마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22일 오후 내정 소감 발표를 위해 서울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박종민기자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엿새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안대희 후보자가 자진사퇴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청와대에서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종용한 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의 결단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안 후보자는 왜 버티지 않고 스스로 사퇴를 결단했을까?

안 후보자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세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전관예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오해로 인해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킨 점, 둘째는 자신이 버틸 경우 현 정권에 부담이 된다는 점, 셋째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에 부담을 주는 점이다.

안 후보자는 그러면서 자신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제가 공직에 있어서 전관예우를 받은 적이 없어서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전관예우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 조심했다"며 자신의 고액 수임료가 전관예우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는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안대희 후보자로서는 불법도 아니고 탈법도 아니니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안대희 후보자가 간과한 게 있다. 다름아닌 국민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 후보자의 경우 고액의 수임료도 문제이지만 총리후보군으로 검증에 동의한 뒤 3억원을 기부한 점과 고액 수임료가 논란이 되자 변호사로서 번 11억원을 내 놓겠다고 한 점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정서에는 어긋난 것이다. 이른바 국민정서법을 너무 몰랐다는 얘기다.

안 후보자는 "억울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늘 잊지 않았고, 이들의 편에 서는 것도 잊지 않았다"라고 밝혔지만 국민의 눈 높이 국민정서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

안 후보자는 검사시절 '강직함'과 '청렴함'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국민검사'라는 호칭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는 과정과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강직함도 청렴함도 그냥 이미지에 불과했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고 만 셈이다.

안 후보자와 절친한 법조인들은 "정면돌파 할 줄 알았다"거나 "최소한 지방선거 때까지는 버틸것으로 봤다"라고 말했다.

법조인들의 눈높이에서는 대법관 출신으로서 그 정도는 충분히 예견가능한 수입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급여생활자인 국민들의 눈 높이에서 하루 천만원의 수입은 상상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11억원이라는 큰 돈을 그렇게 쉽게 내 놓지도 못한다.

고액 수임료만 문제가 됐다면 안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히려 국민의 정서와 어긋나는 가벼운 대응방식이 안 후보자의 사퇴를 불러온 것이다.

한 중견법조인은 "안 후보자가 처음부터 당당하게 대응했으면 좋았을 것" 이라면서 "너무 가볍게 대응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안 후보자의 사퇴는 예견됐던 일이다. 엊그제부터 조심스럽게 안 후보자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고 법조계에서도 청문회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결정적인 건 언론의 보도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우군역할을 해왔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이 버팀목이 되기 보다는 더 무겁게 질책했다. 한 신문사 관계자는 "안 후보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수위의 보도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수신문의 판단은 민심의 눈 높이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안대희 후보자는 총리지명을 받은 뒤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패러다임은 물질과 탐욕이 아닌 공정과 법치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본인 스스로 국민의 정서법을 읽는대는 한계를 보였던 것이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문 전문)

저는 오늘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합니다.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후 전관예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오해로 인해 국민 여러분 실망시켜 죄송합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제가 공직에 있어서 전관예우를 받은 적이 없어서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전관예우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 조심했습니다.

억울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늘 잊지 않았고, 이들의 편에 서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더 이상 국무총리 후보로 남아있는 것은 현 정부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저의 버팀목과 보이지 않는 힘이 돼준 가족들과 저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이 더 이상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제게는 버겁습니다.

저를 믿고 지명한 대통령께도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려 합니다.

제가 국민여러분께 약속한 부분은 성실히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국민이 보내주신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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