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총리 교체와 개각 방침을 밝히면서도 정작 국민적 요구의 핵심인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국가개조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는 비록 낙마하기는 했지만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자신부터 개혁할 준비가 돼 있었다. 안 전 후보자의 자기개혁 의지는 지난 26일 고액수임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개혁은 저부터 하겠다"고 밝힌데서 잘 드러난다.
이에 반해 박 대통령과 청와대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변화를 요구 받았지만 스스로를 변화의 대상으로 객관화시키기 보다는 변화를 이끌 주체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겠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등의 문구에서는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한 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 정홍원 총리의 사의를 수용하고 내각을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몇차례 밝혀 국민들이 개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지만 정작 박 대통령 자신의 변화나 청와대 비서진의 개편을 언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안대희 전 후보자 낙마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안 전 후보자 낙마는 박 대통령의 안이함과 청와대 검증라인의 부실 검증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검증의 최종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교체요구 등 청와대 인적쇄신 요구가 높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청와대 내부의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이 리더십을 바꿔야 한다. 만기친람, 불통, 나홀로 인사...누차 지적돼 왔던 이런 문제들을 고치지 않고는 4년이나 남은 국정운영에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청와대 참모들을 신하가 아니라 동지로 여기고 그들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지금 청와대 수석중 일부는 박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서면으로 보고하고, 전화가 올 경우 응답한다는 얘기까지 들리는 지경이다.
언론과의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자신있게 언론을 만나 주관을 가지고 박근혜정부를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는 발언을 할까봐 잔뜩움츠러든 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모양새다.
인적쇄신도 필수적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안 전 후보자 검증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어도 문제고, 문제를 알고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해도 문제다. 검증의 실무 총책임자인 홍경식 민정수석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사전검증팀 간사를 맡았던 김기식 의원도 "안 전 후보자 재산형성 과정 문제나 전관예우 문제는 충분히 검증 가능했던 사안이었다. 국가적으로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개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를 압박했다.
야당과의 관계, 국회와의 관계를 책임진 박준우 정무수석에 대한 교체요구는 여당에서부터 먼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정현 홍보수석도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지난 28일 한 방송에 출연해서 내놓은 말은 새겨들을만 하다. 그는 "저도 김대중 대통령한테 7번 임명장을 받았다"며 "그만큼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책임지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