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나가는 아베' 어찌하나…곤혹스런 오바마

일본, 워싱턴 자제경고 정면무시…美역내리더십 '상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막 나가는 아베' 앞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일 관계를 또다시 흔들고 동북아 질서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아베 정권의 일탈행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제어할 힘과 수단이 제한된 탓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은 이번 고노담화 검증 사안이 미국의 역내 리더십에 상처를 입히는 동시에 앞으로의 상황전개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온 동북아 질서에도 부정적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 '말 안 듣는' 일본…美 역내 리더십 상처

이번 사안은 무엇보다도 한·일간 화해를 꾀해보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됐다. 특히 최대 동맹이라고 자부해온 일본이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라는 미국의 주문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셈이어서 미국의 역내 리더십에 적지않은 상처가 나게 됐다.

젠 사키 대변인은 지난 3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역대 총리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발언하자 "무라야마(村山) 총리와 고노(河野) 전 관방장관 사과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일본측 노력의 중요한 장(章)"이라고 환영했다. 이는 두 담화를 계승하면서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도발적 언동'을 자제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월말 방한 때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끔찍하다, 지독하다, 쇼킹하다(terrible, egregious, shocking)"고 비판한 것도 바로 일본의 '자숙'을 주문한 것이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도 지난 17일(현지시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일간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대화 독려를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이 '고노담화 흔들기'에 나서면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체면을 손상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일본의 '미국 무시 행위'는 작년말부터 노골화됐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신사참배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납북피해자 재조사와 독자제재 해제를 골자로 한 북·일간 합의도 미국의 뒤통수를 친 '외교적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특히 한·미·일 대북압박 공조에 '구멍'을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베 총리가 이달초 서방의 제재를 받는 세르게이 나리슈킨 러시아 하원의장의 방일을 받아들인 것도 미국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게 소식통들의 지적이다.

◇ 韓美日 '균열'-韓中 '밀착'…동북아질서 흔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전개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온 동북아 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운용 중심축인 한·미·일 3각협력이 흔들리고 한국과 중국이 서로 '밀착'하는 미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한·미·일 3각협력은 일본이 북·일대화 카드를 꺼내들면서 일정정도 균열이 나있는 상태다. 이번에 일본이 고노담화 흔들기에 나서면서 당분간 한·일간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냉각기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으로서는 이번 사안을 놓고 한·중이 어떤 식으로 공동행보를 취할지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한·중간 '밀월' 가능성을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워싱턴으로서는 대(對) 중국 견제를 목표로 삼아온 동북아 전략운용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이 공교롭게도 내달초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거졌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더욱 신경이 예민해진 분위기다.

◇ 日 동북아 안보역할 커져…美 대일 영향력 한계

미국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아베의 거침없는 행보를 제약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동북아 전략운용에 있어 대일(對日) 의존도가 그만큼 커지고 있는 탓이다. 역내에서 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면 미국 혼자로는 힘들고 일본과의 동맹체제가 가장 중요한 전략적 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방예산이 감축되는 상황 속에서 일본의 역내 안보역할 확대를 적극 용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일 과거사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일본에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아베 정권으로서는 이 같은 우경화가 국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가 제한된 대통령제와는 달리 내각제는 정권의 수명이 여론지지율과 연동될 수밖에 없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일본의 일탈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 워싱턴 무대로 한·일 외교전 치열해질 듯

앞으로 워싱턴을 무대로 한·일간에 또다시 '과거사 외교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류보편적 가치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을 내세워 미국내 대일 비판여론을 조성하고 미국 행정부의 움직임을 압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미 대사관과 풀뿌리 시민단체(NG0), 지한파 연방의원들이 유기적으로 연대하고 국제적 유관단체들과 협력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중국도 전략적으로 대일 비난 여론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불붙었던 한·일간 외교전이 또다시 워싱턴을 뒤흔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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