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쿠르드족, 독립국가 염원 고조

주민투표 계획까지 천명…美·주변국 입장이 변수

이라크 정부군과 수니파 반군 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사이 이라크 북부지역에 기반을 둔 쿠르드족이 이같은 혼란을 독립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수반은 23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쿠르드인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시간이 왔다"며 강한 어조로 독립 추진 의사를 천명한 데 이어 24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서도 에둘러 재차 독립 추진 의향을 밝혔다.

현재 이라크 북부를 비롯해 터키와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독립국가 수립이 염원인 '제2의 팔레스타인'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단일국가 건설을 시도했으나 열강의 반발에 밀려 번번이 실패했다.

이같은 쿠르드족의 운명이 최근 이라크 사태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셈이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는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하는 틈을 타 자치권 바깥 지역이자 핵심 유전지대인 키르쿠크 지역을 장악하고 독립 추진을 위한 주민투표 계획까지 천명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독립의 꿈에 바짝 다가선 모양새다.

◇ 독립 열망 번번이 좌절…'기구한 역사'

쿠르드족은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떠도는 세계 최대의 민족으로, 쿠르드족 문제는 중동에서 제2의 팔레스타인 문제로도 거론된다.

쿠르드족 역사는 4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들은 지금의 이라크·터키·이란·시리아 국경의 산악지대에서 유목생활이나 농경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건설됐다가 페르시아에 흡수된 메디아 왕국의 중심이 쿠르드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12세기 아이유브 왕조를 거쳐 16세기 오스만투르크제국에 복속됐다가 이후 오스만투르크와 이란의 분할, 이라크의 분리 과정에서 여러 나라에 쪼개져 귀속됐다.

20세기 들어서 1차 대전 후 오스만 제국 해체 과정에서 연합국이 쿠르드의 독립을 보장하는 세브르조약을 체결하지만 터키의 강력한 반발로 조약은 파기됐다.

2차 대전 후 소련이 점령한 이란에서 쿠르드족이 쿠르드인민공화국을 세우기도 했지만, 이 공화국은 소련군이 떠난 후 1년 만에 무너졌다.

그 결과 쿠르드족은 현재 이라크 북부와 이란, 시리아, 터키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들이 모여 사는 영토를 일컬어 '쿠르디스탄'으로 칭하기도 한다.

쿠르드족 인구는 3천만~3천500만명으로 추산되며 이중 절반가량인 1천460만명이 터키에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500만~650만명이, 이란에는 80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미국 지원으로 자치권을 확보, 북부지역에서 자치정부를 구성해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 군(軍)을 갖고 있다.


쿠르드 자치지역에는 약 45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중앙정부로부터 이라크 전체 원유 판매대금의 17%를 배분받지만 수입 분배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벌여왔다.

◇ 美·주변국 입장이 독립 추진 변수

이달 들어 이라크 급진 수니파 반군인 '이라크·레바논 이슬람국가'(ISIL)가 북부 모술 지역 등을 장악해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계속되면서 쿠르드자치정부는 다시 독립국가 건설의 꿈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들의 자체 군 조직인 페쉬메르가는 지난 12일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하는 틈을 타 중앙정부와 관할권을 다투던 유전지대 키르쿠크 지역을 장악했다.

이에 더해 서북쪽 시리아 접경지 라비아와 동남쪽 이란 접경마을 잘룰라까지 장악하며 기존의 담당지역보다 40% 늘어난 지역을 관할하게 됐다.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대통령은 23일 CNN 인터뷰에서 "쿠르드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시간이 왔다"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독립 추진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수십년간 이라크 쿠르드족의 우방이었던 미국이 독립 추진에는 선을 긋고 있다는 점,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을 탄압해온 터키와 이란 등 주변국들의 대응 등은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 추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4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을 방문해 바르자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라크가 '통합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stay united)는 뜻을 밝혀 미국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바르자니 대통령은 케리 장관에게 "우리는 새로운 현실, 새로운 이라크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해 독립 추진 의향을 되풀이 한 것으로도 분석됐다.

바르자니의 이같은 발언으로 볼 때 미국이 이라크에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과거 미국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에 맞서는 쿠르드족을 활용하고자 이들을 대거 지원했지만, 이번 이라크 사태에서는 모든 종파를 아우르는 통합정부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원할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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