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反융커 2라운드…EU 개혁론 선봉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EU 탈퇴론도 고조

'EU 개혁을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지명 투표에서 장-클로드 융커 전 룩셈부르크 총리를 낙마시키는데 실패한 영국 정부가 EU 개혁론의 기치를 내걸고 나섰다.

영국 정부는 반 개혁론자인 융커 전 총리가 EU 집행위원장을 맡게 됨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필요성이 분명해졌다며 EU 개혁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다.

융커 지명자는 이와 관련, 29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통화에서 "영국의 정치적 우려와 관련한 합리적인 해결책 모색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영국 '달래기'에 나섰다.

◇ '독불장군' 영국, EU 개혁 협상에 사활 = 지명 표결 패배로 고립된 영국의 남은 선택카드는 EU 탈퇴 카드를 내세운 EU 개혁안 관철이다.

캐머런 총리는 반유럽 정서에 떠밀려 차기총선 공약으로 2017년 이전 EU 탈퇴 국민투표 시행을 내건 마당이어서 EU 개혁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영국 정부는 집행위원장 지명은 막지 못했지만, 개혁 협상에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EU 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이 확인됐고 회원국 대부분이 이를 공감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이 EU를 떠나기보다는 새 협정 아래 EU에 남기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새 EU 집행부와의 개혁 협상이 무산되거나 협상 성과가 영국 유권자의 눈높이에 못 미치면 영국의 EU 탈퇴 행보는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7일 EU 정상회의의 집행위원장 지명은 사상 처음으로 표결로 처리됐다. 좌장국인 독일이 주도하는 융커 지명에 반발한 캐머런 총리가 합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28개국 정상이 참여한 개표 결과는 26대 2로 캐머런 총리의 참패였다. 반대투표에는 헝가리만이 동조해 영국이 내건 EU 개혁론은 회원국들의 외면을 받았다.

◇ 지명반대 운동 앙금…EU 협상에 영향 주나 = 영국은 융커 지명 거부운동으로 쌓인 앙금으로 인해 EU 집행위를 상대로 한 협정개정 협상에도 부담을 안게 됐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원장 취임 후 영국을 방문할 융커와 캐머런 총리의 만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영국은 융커 지명자가 EU 개혁에 적합하지 않은 구시대 인물임을 내세워 거부운동을 펼쳤다.

국민투표를 위해 EU의 변화를 끌어내려면 유럽통합론자인 융커보다는 새 인물이 집행위원장을 맞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에서다.

유럽의회 다수파 대표인 융커를 거부하면 독일의 입김이 센 EU 내부에 개혁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노림수도 깔려있다.

독일이 영국의 융커 거부에 동조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유럽의회 최대 정파의 주축인 독일 기민당(CDU)을 이끄는 메르켈 총리에게 자기진영 후보를 거부하라는 캐머런 총리의 요구는 수용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중도좌파 정상들로서도 재정 긴축을 완화하는 조건이 제시된 마당에 EU 안의 '독불장군'인 영국 편을 들 이유는 없었다.

중도좌파 회원국들은 EU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EU 통합에 역주행하는 영국 정부와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의 EU 개혁론은 EU에 위임한 경찰 및 사법권과 이주민 고용통제, 사회복지 관련 권한을 회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로화를 통화로 채택하지 않은 영국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EU 규제에 대해서는 거부권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영국의 요구는 회원국으로서의 기본 의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란 비판적인 전망이 따른다.

◇ 힘 받는 EU 탈퇴론…내년 총선이 최대변수 = 융커 지명 거부운동이 무위에 그치면서 영국 보수진영에서는 EU 탈퇴론이 힘을 얻고 있다.

EU 안에서 개혁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영국의 EU 탈퇴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론조사 기관 'MoS'에 따르면 융커 지명 이후 영국 유권자의 EU 탈퇴 지지율이 47%로 오히려 상승했다. 탈퇴 반대 지지율은 8%포인트 낮은 39%에 머물렀다.

제러미 헌트 보건장관은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유럽 정상들의 비겁한 선택으로 영국의 EU 탈퇴 투표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크리스 그레일링 법무장관도 "캐머런 총리의 단호한 융커 지명 거부운동으로 보수당의 총선 전망은 밝아졌다"고 평가했다.

사지드 자비드 문화담당 부장관은 "EU 정상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영국이 EU 탈퇴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할 이유가 확실해졌다"고 가세했다.

집행위원장 지명 경쟁 패배로 영국이 EU 탈퇴 쪽으로 한걸음 다가섰지만, 변수는 여전히 많다.

당장 캐머런 총리의 국민투표 공약은 내년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재집권에 실패하면 효력이 사라진다.

총선 지지율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는 제1야당인 노동당은 EU 탈퇴 국민투표에 반감을 보이고 있다. 노동당의 집권은 EU 개혁 협상노선에도 큰 변화를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영국과 EU의 개혁 협상은 캐머런 총리가 속도전에 나서더라도 내년 총선 이후에나 구체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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