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째 망망대해 떠도는 원양어선…무슨 일이?

해수부-선사, 줄다리기 속 어선은 표류…불법조업국 위기 몰린 원양어업 현주소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港)에서 200마일 떨어진 공해상. 엔진도 꺼놓은 채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우리나라 원양어선 한 척이 있다.

15명을 태운 인성7호가 공해상을 떠돈지도 7개월째. 한때 일터였던 500톤의 원양어선은 수용소로 변했다. 선박 위성전화로 기자와 통화한 박창용 선장은 "부식이 떨어져 인근을 지나는 선박에게 구걸까지 하고 있다"며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침몰 가능성이다. 배 선창에는 몇 달 동안 잡아 올린 이빨고기, 즉 '메로'가 가득 차 있다. 배 밑바닥에 실려있는 연료도 거의 바닥나, 무게 중심이 위로 쏠려 있는 상태. 태풍이 불어닥치면 순식간에 침몰이다.

박 선장은 "복원력이 거의 상실돼 태풍이 불고 높은 파고가 일어서 배가 크게 기우뚱하면 그대로 침몰"이라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다"고 말했다.

7개월째 공해상을 떠돌고 있는 원양어선, 인성7호 (출처=인성실업 홈페이지)

◈ 만선한 배, 못돌아오는 이유는?

지난해 6월 출항해 만선(滿船)한 배가 되돌아오지 못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7개월째 망망대해를 떠도는 사연은 이렇다.


원양어선 인성7호는 메로(이빨고기)를 잡는다. 이빨고기는 멸종위기종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에 따라 국제적으로 어획량과 조업지역이 철저히 제한된다.

때문에 규정을 지켜 잡은 이빨고기라는 자국 정부의 증명서가 있어야 정식으로 통관할 수 있다. 증명서 없이 입항하면 해당 정부의 항구에서 이빨고기를 모두 압수당하게 된다.

증명서를 발급하는 기관은 해양수산부 원양산업과다. 그런데 해수부는 인성7호에 대한 어획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상태다. 인성7호가 아르헨티나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들어가서 불법조업을 한 정황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모든 원양어선에는 'VMS'라고 불리는 선박위치추적관리시스템이 탑재돼 있어 항적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해수부는 인성7호가 조업기간 동안 수차례 아르헨티나의 EEZ를 침범했으며, 불법으로 조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어획증명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선사인 인성실업은 인성7호가 EEZ를 침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성실업 김정도 상무는 "해당 수역에서 우리 원양어선들이 40년째 조업을 해왔다"며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곳이고 그동안 문제가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EEZ 기준 놓고 논란…뒤늦게 전자좌표?

논란이 생기는 지점은 EEZ 선을 긋는 기준이다. 해수부는 VMS를 판매한 프랑스 기업에서 가져온 자료를 이용하고 있고, 인성7호는 해도(海圖)를 참고해 조업을 해왔다.

전자 데이터 상의 좌표보다는 아무래도 수작업으로 측량하는 해도가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서로가 EEZ선을 측량하는 기준이 다른 상황이라 EEZ를 침범했느냐하는 부분에서 논란이 생긴다.

문제는 해수부가 적용하고 있는 전자 좌표상의 EEZ선을 사용하겠다는 지침이 단 한 번도 인성7호에 전달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관례처럼 해도를 사용해 조업을 해오던 원양어선에게, 느닷없이 뒤늦게 전자좌표를 적용해 규제를 하는 형국이다. 인성실업 김 상무는 "해수부가 어떤 EEZ 기준을 사용하겠다고 원양어선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해수부는 왜 뒤늦게 전자 좌표를 이용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을까. 이유는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불법조업국(IUU)'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EU는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를 예비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고, 감시를 강화해왔다. 지난달에는 EU 실사단이 직접 우리나라를 찾아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 불법조업국 지정 위기…인성7호, 원양어업계 현주소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되면 EU로의 수산물 수출이 봉쇄되고, 우리 어선들은 EU국가의 항구에 입항이 거부된다. 해수부는 불법조업국 지정을 피하기 위해 원양어선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7호가 EEZ 침범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인성7호는 지난해 남극해상에서 이빨고기를 어획제한량을 넘겨 잡았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과거 전력까지 더해져 이번에는 제대로 조사를 해야겠다는 해수부의 입장은 완강하다.

해수부에서는 외교채널을 통해 일단 공해상을 떠돌고 있는 선박이 입항은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며,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항구로 돌아가 있을 것을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선사 측은 입항하는 항구의 정부가 어획한 고기를 몰수하지 않도록 보장해달라며 버티고 있다. 실려 있는 이빨고기는 대략 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선장을 비롯한 승선원들도 어획량을 몰수당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1년 고생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입항을 결정할 수도 없다.

인성7호의 박 선장은 "언제 배에 불상사가 발생할지 몰라, 우루과이 해상경비대에 비상 통신망을 켜놓고 있는 상태"라며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유령선처럼 떠돌고 있는 인성7호는, 그동안 국제적 비난에 귀를 막고 조업해온 원양어업계의 불감증과 불법조업국 지정위기에 이를 지경까지 손을 놓고 있던 해양수산부, 그들의 불통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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