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에서 대중적 정치인으로…아프간 가니 당선인

아프가니스탄 대선에서 잠정적으로 승리한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은 학자에서 국제 관료로, 또 대중적 정치인으로 탈바꿈을 거듭했다.

지난 2009년 대선 때 2.9%라는 미미한 득표를 한 그는 5년 뒤인 지난 4월 대선 1차 투표에서 8명의 후보 가운데 31.5%를 얻어 2위를 했으며 지난달 열린 결선에서는 56.4%라는 지지율을 끌어냈다.

이런 상승세는 그가 이른바 '친서방' 관료에서 아프간 국민의 요구를 따르는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한 덕분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그를 25년간 알고 지낸 작가 아흐메드 라시드는 그가 원래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어서 친화력이 부족하다고 평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2009년 대선 참패 후 그는 관료적인 모습을 버리고 아프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 끝에 아프간 부족 이름인 '아흐마드자이'를 붙여 쓰고 아프간 전통 의상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턱수염을 기르고 이슬람 성지인 메카로 순례도 다녀왔다.

미국에 살면서 취득한 시민권은 2009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미 포기했다.

그는 또 예전에 '살인자'라고 비판한 우즈벡족 출신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을 부통령 후보로 영입했다. 도스툼은 1990년대 탈레반과 전쟁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의 영입을 두고 인권 단체의 비판도 많았지만, 가니는 우즈벡족 표를 끌어오기 위해 감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는 탈레반 전사로 의심돼 아프간 내 미군 기지에 수감된 이들의 석방을 주장해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아프간 대중주의자'로의 변신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놀라운 전개라고 NYT는 평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한 뒤 레바논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으로 진학했을 정도로 미국을 동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7년에는 정부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UC버클리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90년에 미국 시민권도 획득했다.

이어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며 러시아 석탄 산업을 비롯해 중국, 인도 등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주도의 아프간전으로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고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들어서자 귀국해 재무장관을 지내며 조세 체계를 세우고 새 화폐를 도입했다.

장관을 그만두고 카불대 총장으로 있으면서 2006년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했으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도 거론됐다.

이런 경력을 가진 그의 변신이 그가 쓴 책 제목처럼 '실패 국가 개조'에 어떻게 작용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압둘라 압둘라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타지크족을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를 당장 해결해야 한다.

자칫하면 타지크족과 자신을 지지하는 파슈툰족의 유혈 충돌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탈레반 반군 진압도 큰 숙제다.

미군을 비롯한 나토군은 올해 말 아프간전을 끝내고 주둔 병력을 철수할 예정이다. 그는 철군 이후에도 9천800명의 병력을 남겨 아프간군 훈련 등 대테러 지원업무를 하겠다는 미국과 양자안보협정(BSA)에 서명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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