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 "LG 이진영이 '두산, 괜찮냐'고 묻더라"

'흔들림 없이 잘 해야 할 텐데...' 두산 주장 홍성흔(오른쪽)이 10일 잠실 LG전에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사진=두산 베어스)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두산-LG의 잠실 라이벌 대결이 열린 10일. 경기 전 두산 홍성흔(37)은 무더운 날씨에도 밝은 표정이었다.

더그아웃에 있던 취재진에게 "그늘에만 있지 말고 햇빛에 한번 나와 선수들과 함께 더위를 체감해보라"고 짐짓 핀잔(?)을 주는 등 예의 활기찬 모습이었다. 전날 이길 뻔한 경기를 연장 끝에 끝내기 패배를 당한 무거운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주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경기 후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팀도 이겼고, 본인 역시 맹타를 선보이며 의미 있는 기록도 세운 날이었다. 홍성흔은 이날 5회 2점 홈런으로 통산 5번째 1900안타 고지를 밟았고, 9번째 2800루타도 달성했다.

홍성흔은 "개인 기록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경기였다"고 무겁게 입을 뗐다. 경기 내용 때문이다.

▲막판 8점 차 리드에도 집중력 부재로 진땀승

이날 두산은 장단 16안타를 몰아쳤다. 2안타 2타점의 홍성흔, 3안타 2타점 4득점의 김현수, 4안타 4타점의 오재일이 홈런포까지 쐈다. 8회초까지 12-4로 앞서, 이 정도면 이후 마음 편히 경기를 볼 만했다.

하지만 두산은 8회만 7점을 내주며 1점 차까지 쫓겼다. 9회초에도 홍성흔의 안타를 시작으로 1점을 내며 한숨 돌리는가 싶었으나 9회말 다시 1점 차까지 턱밑까지 추격당했다. 상대의 오버런 실수와 1사 3루 위기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임시 마무리 정재훈이 아니었다면 치욕적인 대역전패를 당할 뻔했다.

'어쨌든 이기니 좋네' 마무리 정재훈(가운데) 등 두산 선수들이 10일 잠실 LG전에서 힘겨운 승리를 거둔 뒤 후련한 표정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사진=두산 베어스)
홍성흔은 "이게 다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경기가 나온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용찬과 김동주 형 문제로 팀이 흔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산은 지난 4일 마무리 이용찬이 도핑 테스트에 걸려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또 '두목곰' 김동주(38)는 좀처럼 1군 기회를 잡지 못하자 구단에 트레이드 의사를 보였다. 이래저래 경기에만 집중할 상황이 아니다.

송일수 감독은 이날 경기 전 "이용찬의 부재로 불펜진이 힘들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5할 승률 및 4위권 복귀를 위해서는 지금이 승부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펜진은 와르르 무너졌고, 8회 수비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진 1루수 오재일이 땅볼을 뒤로 흘리는 어이없는 실책까지 나왔다.

▲"라이벌 팀 주장이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

홍성흔은 "경기 전에 (이)진영이가 와서 '형, 두산 요즘 괜찮아요?'라고 묻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상대팀(LG) 주장이 와서 물을 정도면 확실히 팀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했다.

사실 LG가 남의 사정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다. 7위로 5위인 두산보다 성적이 좋지 않다. 그러나 최근 행보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LG는 초반 김기태 감독 사퇴로 양상문 감독이 부임한 이후 차츰 분위기를 정비해나가고 있다.

6월 10승11패로 선방한 뒤 달을 이어 거둔 6연승을 포함해 7월 6승3패다. 초반 부진으로 어차피 4강에 가면 좋고, 못 가도 괜찮은 터라 부담은 적다. 여기에 워낙 친한 사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진영은 선배에게 넌지시 물어본 것이다.

'육중한 노구를 이끌고 달렸지만...' 두산 홍성흔이 10일 잠실 LG전에서 8회 오재일의 2루타 때 홈으로 쇄도하고 있다.(사진=두산 베어스)
반면 두산은 올해도 우승후보로 꼽혀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아쉬움을 씻을 태세였다. 5월까지 3위였지만 6월 5승15패 최악의 부진을 보여 5위까지 떨어졌다.

7월에도 4승4패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2개 주전조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돌 만큼 두터운 전력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다 내 잘못이요" 어느 때보다 주장 역할 중요

두산은 지난해 준우승을 이끈 김진욱 감독을 경질하면서 안팎으로 말들이 많았다. 2군에서 1군으로 승격, 부임한 송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의 문제가 제기돼왔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한국말이 서투른 까닭. 때문에 프런트가 실질적으로 선수 운용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적잖다.

선수단은 물론 취재진과도 통역을 통해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때문에 경기 전 송 감독과 취재진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자주 흐른다. 다른 감독들과 달리 윤활유와 같은 가벼운 우스갯소리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 감독도 다소 내성적이라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처럼 먼저 농담을 건네는 일도 드물다.

두산 송일수 감독(86번)이 10일 잠실 LG전에서 승리한 뒤 황인권 통역과 함께 그라운드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두산 베어스)
이런 상황에서는 주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가운데 감독의 영향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단을 한데 묶어 통솔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성흔도 절감하고 있다. "다 주장이 바보 같아서 팀이 이렇게 됐다"고 자책한 홍성흔은 "내가 여기에 다시 온 이유는 경기력보다 팀을 뭉치게 하고 활력을 넣어주는 것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경기에서 이겼으니 다시 힘을 내 반등하도록 하겠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그러자 홍성흔의 강한 턱선이 더욱 다부지게 부각됐다. 과연 곰 군단이 바닥을 치고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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