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병언 증거, 장례식장 방치…'얼빠진 경찰'

유류품 사진만 찍은 뒤 장례식장 직원에 떠넘겨…신분 확인되자 급히 챙겨가

6월 12일 유병언 시신 발견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순천경찰서 내부 문건 자료.
유병언 전 회장의 사체를 한 달 넘게 방치하며 초동수사에 허점을 드러낸 경찰이 현장에서 발견된 소주병과 스쿠알렌 병 등 주요 증거도 시신과 함께 장례식장에 방치했던 것으로 CBS 노컷뉴스 취재 결과 드러났다.

CBS가 단독 입수한 순천경찰서의 부검의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6월 12일 순천시 서면 학구리 야산에서 발견된 변사자에 대해 광주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

이는 '사인을 명확히 한 뒤 유족에게 사체를 인도하라'는 검찰의 지휘에 따른 것이다.


이튿날인 6월 13일 광주 국과수에서 1차 부검이 진행된 뒤 '시신은 유 씨가 맞다'는 감정 결과가 통보되는 21일까지 유 전 회장의 시신은 40일 동안 순천의 장례식장에 방치됐다.

이 과정에서 유 씨의 유류품도 경찰서가 아닌 장례식장 안치실에 시신과 함께 보관된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경찰이 유병언 시신 발견지인 전남 순천 학구리 야산 매실밭에서 사인과 도주 경로 등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유류품 등을 찾기 위한 정밀 재수색에 나섰다. (사진=최창민 기자)
당시 유 씨의 주머니에서는 깨진 사기그릇 조각, 접혀진 마대 포대 1장, 콩 여러 알과 스쿠알렌 빈병 1개가 발견됐다. 또 유 씨의 시신 근처에 빈 소주병 2개와 막걸리병 1개도 놓여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소주병 등 유류품 사진만 찍은 뒤 해당 물품을 모두 순천장례식장 직원에게 인계했다. 소주병과 막거리병 등에 대한 지문 감식이나 약물 검사 등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유 씨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명확한 상황에서 소주병 등에 남겨진 지문과 병 안의 내용물이 주요 증거가 될 수 있음에도 이를 방치해 주요 증거를 놓친 셈이다.

유 씨 시신 발견과 관련해 최초 발견자 진술이 담긴 경찰 내부 문건. 유 씨 주변에 술병 여러개가 놓여 있었다는 상황 설명이 기재돼 있다.
순천경찰서 관계자는 "변사체 발견 당시 소주병과 막걸리병에 대한 지문 감식은 하지 않았다"며 "변사체가 유 씨로 최종 확인된 날인 지난 22일 시신을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옮길 때 장례식장에 있던 유류품도 함께 보냈다"고 밝혔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유 씨의 시신이 들어올 때 경찰 입회하에 소주병과 스쿠알렌 병 등을 전달받아 안치실에 보관했다"며 "나중에 경찰이 와서 다 수거해 갔다"고 전했다.

평소 유 씨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타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팀이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수사에 정통한 경찰 관계자는 "타살인지 자살인지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 시신 주변에 있던 술병이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문 감식 후 과학수사팀이나 경찰서 압수물 창고에 보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순천서 직원들이 유 씨를 단순 노숙인으로 생각해 사건과 증거 자체를 안이하게 본 것 같다"며 "좀 더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고 증거를 보관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 씨의 시신과 함께 주요 증거를 40일 동안 장례식장에 보관하던 경찰은 지난 21일 DNA 검사를 통해 유 씨의 신원이 확인되자 시신과 유류품을 챙겨 부랴부랴서울 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겼다.

한편 유 씨의 사인을 조사해 온 국과수는 25일 오전 10시 유 씨의 사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