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災)에 의한 더블헤더 '서스펜디드 게임'

'끝내 켜지지 못한 조명탑' 5일 NC-롯데전이 진행 중이던 5회초 2사에서 3루 쪽 조명탑이 꺼져 경기가 중단되자 수비하던 롯데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부산=롯데 자이언츠)
프로야구에서 비나 강풍 등 천재지변이 아닌 이유로 사실상의 더블헤더가 진행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던 NC-롯데의 경기다.

1-1이던 5회초 2사 1루 NC 공격 때 사단이 일어났다. NC 김종호의 타석 때 3루 쪽 내야 뒤편 조명탑이 갑자기 꺼진 것. 심판진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49분을 가디렸으나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다고 판단, 서스펜디드 게임(suspended game)을 선언했다.

말 그대로 경기를 유예한다는 뜻으로, 경기는 똑같은 상황에서 다음 날 재개된다. 5일 경기는 6일 오후 4시부터 펼쳐진다.


▲선수들 체력 부담 '하루에 1.5경기'

두 팀의 입을 피해는 적잖다. 5회 2사부터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더블헤더나 마찬가지다. 하루에 1.5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에 선수들의 피로도가 가중된다. 오후 4시면 통상 3시간 전 훈련을 하는 홈 팀은 한낮인 1시에 몸을 풀어야 한다.

때문에 롯데는 훈련 없이 가볍게 몸만 풀고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NC는 정상적으로 1시간 정도 훈련을 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팀 모두 낯선 상황이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마운드에 타격이 크다. 전날 등판했던 선발 투수들은 규정에 따라 일단 6일에도 나서야 한다. 그러나 보호 차원과 로테이션을 감안해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어렵다. 롯데는 장원준이, NC는 웨버가 그대로 나선다. 장원준은 67개, 웨버는 51개 공을 던졌다. 평소대로라면 6, 7회는 능히 소화할 수준이다.

때문에 불펜 투수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개된 경기가 끝나고 20분 휴식 뒤 이어질 다음 경기도 치러야 하는 까닭이다.

팬들도 찝찝하긴 마찬가지다. 한창 무르익던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데다 다음 날 이른 시간에 경기장을 찾거나 중계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적은 관중이 예상되는 가운데 선수들의 경기 몰입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인재 사고는 막아야

지난 2011년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던 4월 16일 대구 두산-삼성전.(자료사진=삼성 라이온즈)
문제는 이런 소동이 인재(人災)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조명탑이 꺼진 것도 문제지만 원인조차 파악되지 못한 한심한 상황이었다. 이후 더위와 높은 습도 때문에 전기선이 붙은 게 이유로 드러났지만 이미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조명 문제가 원인이 된 서스펜디드 게임은 이전까지 2번 있었다. 1999년 전주 쌍방울-LG전, 2011년 대구 삼성-두산전이었다. 프로야구 33년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앞선 2개 구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설 낙후가 덜한 사직구장이라 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직구장은 1985년 개장했으나 조명탑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교체돼 정기적인 점검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직 외 다른 구장에서도 최근 인재에 의한 경기 취소가 있었다. 올해 개장한 신축 구장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는 태풍의 영향으로 경기장 지붕 패널이 떨어져 2~4일 삼성-KIA전이 모두 취소됐다. 4일 인천 문학 NC-SK전은 전날 내린 비로 그라운드에 생긴 웅덩이 때문에 취소됐다. 날씨가 아닌 구장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

구장 관리는 보통 구단이 맡지만 시설물 교체 등은 해당 자치단체 소관인 경우가 많다. 적잖은 구단 관계자들이 "발빠르게 처리하고 싶은 부분도 지자체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지체가 된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국민스포츠로 발돋움한 프로야구 인기 상승에 구장 관리 등 관계자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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