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지디족의 비극…"물·식량 없고 곳곳엔 시신"

'IS' 포위 신자르산은 거대한 '무덤'…아직 2만여명 고립

'물도, 음식도, 열기를 피할 그늘조차 없다. 타는 듯한 갈증에 축 늘어진 아이에게 부모는 하릴없이 마른 침을 뱉어 먹일 뿐이다. 곳곳에 사자(死者)들의 무덤이 솟아나고, 방치된 시신은 개들에게 뜯어먹힌다'

지금 이 순간 이라크 북부의 소수종파 야지디족이 처해 있는 목불인견의 참상이다.

이라크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에 포위됐다가 간신히 탈출한 야지디족 생존자들은 '생지옥'이 따로 없는 북부 신자르산의 상황을 이같이 증언했다고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신자르산은 조로아스터교 등 여러 가지 믿음이 복합된 종교를 믿는 야지디족이 평소 기도를 올리던 성지이자 양을 치러 올라가던 평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3일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IS의 위협에 수만명의 야지디족이 몸을 숨긴 신자르산은 '죽음의 산'으로 돌변했다.

집에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오다시피 한 야지디족은 신자르산에 오른 뒤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타는 듯한 더위와 갈증,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야지디족 난민인 잘랄 슈라프 딘은 "물도, 먹을 것도, 앉아서 쉴 그늘 하나도 없다"고 NYT에 전했다.

기력이 약한 노인들이 먼저 희생됐다. 자신의 이름을 타리크라고 밝힌 33세 야지디족 남성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3일 IS가 온다는 이웃의 전화를 받고 가족과 함께 신자르산으로 몸을 피했으나 고립된지 이틀 만에 80세 부친이 탈진해 숨졌다고 말했다.

타리크는 "사람들이 기진해 땅에 쓰러져갔다. 눈에 띄는 시신만 500∼1천구에 달했고 개가 시신을 뜯어먹는 장면도 목격했다"며 "이건 위기가 아니라 재앙"이라고 호소했다.


NYT 역시 인터뷰에 응한 야지디족 난민 십수명 모두 가족·친척 가운데 적어도 한두명씩을 신자르산에서 잃었다고 전했다.

미국 등 서방이 신자르산 일대에 식량과 물 등 구호물자를 떨어뜨렸지만 방대하고 험준한 산악지대에 흩어져 있는 피란민들이 이를 수중에 넣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부인과 눈먼 막내딸 등 자녀 셋을 끌고 신자르산을 오른 슐레이만 일리아스 아슬란도 구호품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아슬란 부부는 나흘간 버티다 물이 없어 아이들에게 침을 뱉어 먹여야 할 지경이 되자 목숨을 걸고 산을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아슬란 가족은 다행히 IS 조직원의 눈을 피해 한시간여를 걸어내려온 끝에 시리아 국경 인접지역에 닿았고, 이후 시리아로 넘어갔다가 다시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지역인 도후크로 이동했다.

신자르산에 있던 야지디족들은 9일 대거 신자르산을 빠져나왔다. 이들은 쿠르드족 군사조직인 페쉬메르가와 야지디족 전사들이 탈출로를 열어준 덕에 시리아로 피신할 수 있었다고 NYT에 전했다.

이라크 경찰과 국경검문소 직원들은 신자르산에서 탈출한 야지디족이 1만5천명에서 2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비슷한 경로로 도후크로 탈출한 타리크는 "아직도 산악지대 오지에는 2만명 이상이 남아있다"며 "누군가 물과 식량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그들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리크나 아슬란 가족은 그나마 운 좋게 신자르산에서 벗어났지만 오갈 데가 없는 처지다.

아슬란 가족은 도후쿠에 도착한 뒤 고속도로 다리 아래 임시 거처에 머무르며 현지 쿠르드족 주민들이 가져다 준 식량에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다.

아슬란은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가더라도 죽게 될 것"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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