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반발에 또 뒷걸음…배출권거래제에 경고음

과도한 할당량으로 폭락 경험한 유럽 사례 타산지석 삼아야

정부가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내년에 계획대로 시행하되, 재계 반발을 고려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부담을 과도하게 줄여주면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초기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어 또 한차례 논란이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05년 탄소배출권 거래(EU-ETS)를 시작했다. 그런데 2006년 톤당 30유로까지 상승했던 배출권 가격은 1차 계획연도가 끝나던 2007년에는 톤당 0.3유로까지 가격이 100배나 폭락했다.

과도한 할당량이 화근이었다. 기업들에게 기본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할당량을 너무 많이 줘서, 굳이 배출권을 더 구입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요가 크게 줄면서 거래가 부진한 상황이 발생하자 거래제 무용론까지 등장했고, 결국 유럽연합은 2008년부터는 배출권 거래제를 상당부분 손질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연합의 거래제 초창기와 비슷하게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14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윤상직 산업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비공개 회동을 갖고, 배출권 거래제를 내년에 계획대로 시행하되 기업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이 바로, 기업에 배출 할당량을 늘려주는 것과 배출 초과분에 대한 과징금(현재 톤당 10만원)을 낮춰주는 방안인데, 벌써부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인택 기후변화대응전략연구소장은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측면에서 봤을 때, 기업들에게 할당량을 늘려주거나 과징금을 낮춰주는 것은 배출권 거래제도의 근본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할당량을 크게 늘리거나 과징금을 낮춰주는 것은 배출권의 수요자체를 떨어뜨려 결국 거래제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년부터 2017년까지 1차 계획연도 3년 동안 설정된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은 모두 16억4천만톤이다. 2009년을 기준으로 2020년까지 산정한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의 30%를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앞서 재계의 반발에 밀려 배출권 거래제 시행을 2년 늦춘 정부가 이번에도 한발짝 물러나 할당량까지 대폭 늘려줄 경우, 배출권 거래제도가 실패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에따라 배출권 거래제의 실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기업의 부담도 어느정도 경감해 줄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놓고, 또 한 번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